푸른 잎 사이사이로 하늘이 파랗게 살짝 드러나 보인다. 한켠으로 발그라니 오렌지색을 띠면서 감잎이 물들기 시작했네. 벌써. 아직도 감들이 많이 달려 있는데, 올해에는 빨리 단풍이 드네.
수년 째 뒷마당 한구석에 단감나무 한 그루 서 있다. 농부의 피땀어린 수확이라도 되듯이, 정성스러운 손과 풍요롭고 넉넉한 심정으로 감을 따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탐스러이 열매 맺을 수 있을까. 새삼 경이롭기만 하다. 무에서 만들어진 결실 앞에서 저절로 겸허해지고 기도하고픈 순간이다.
켜켜이 쌓인 미움의 때, 증오의 때, 슬픔의 때, 소심의 잔가지와 강박관념 등을 탁탁 털어 내면서 마음도 함께 닦아낸다. 바구니에 수북히 쌓여지는 감들을 냅킨으로 싹싹 훔쳐내면 반짝반짝 윤기가 난다. 더욱 더 탐스럽고 먹음직스럽다.
감나무는 3, 4월 몸에 잠깐 꽃을 피워 향긋한 내음을 짙게 풍긴다. 여자아이들은 꽃반지 만들어 끼고, 감 꽃 목걸이 걸고 다니던 시골의 옛 풍경엔 정겨움이 물씬 묻어난다. 또한 감잎을 끓여 차로 마시면 몸에 좋다고 한다. 더구나 마지막엔 곱게 단풍으로 치장하여 온몸을 다 사르는 잎사귀들. 버릴 것 하나 없이 전부를 몽땅 던져주고 가는구나.
감은 하나씩 달리지 않는다. 옹기종기 엉겨 붙어 머리를 사이좋게 맞대고 있다. 마치 우리 인간들이 혼자선 살기 어려워 상부상조하면서 얽혀 살듯이. 끈을 서로 놓지 못하고 잡아당기며 밀고 이리저리 기대어 사는 모습 말이다.
웬만한 집 뒤뜰을 당당하게 차지하고 기품 있게 서 있는 감나무! 유년의 시골과 고향을 옮겨와 느낄 수 있어 즐거움을 더해 주는 유일한 낙이 아닐까. “어머 이 LA에도 단감이 있구나” 하시던 어머님의 목소리가 젖어 들리는 듯 하다
감을 이웃 친지들과 나누어 가지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옛 스승님의 ‘감이 익는 마을’을 다시 구해 읽고 싶어진다. 못다 이룬 소망과 욕심, 꿈, 오늘도 감나무에 높다랗게 매달아 놓는다. 성취와 목적을 위해 새롭게 다짐하는 굳은 결심도 함께. 그런데 자주 자주 아쉬움에 파르르 떤다. 깊어 가는 이 가을 아련한 하늘 아래.
안순희/하시엔다 하이츠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