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생각
유숙자/수필가
작은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부모는 자식으로부터 전화를 받을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일상적인 대화를 끝내고 나서 의논 드릴 것이 있다며 뜸을 들인다. 나는 올 것이 왔구나 생각하면서도 모른척하고 가만있었다.
큰아들이 미리 언질을 주었기에 침착하게 아들의 말을 경청했다.
입양하려는 아기를 곧 데려 올 수 있을 것 같은데 흑인 아기가 될 것 같다는 요지였다. 9.11 테러 이후 외국에서 아기들이 입양되지 않고 있어 한국 아기가 귀하고 백인 아기는 거의 입양아가 없다고 한다. 아기를 많이 낳는 흑인의 아기일 확률이 99%이며, 산모가 아기를 낳을 때 병실로 함께 들어가 갓 태어난 아기를 데리고 오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잠시 할말을 잃었다. 침착한 아들 내외가 몇 년을 두고 심사숙고하여 결정한 일이니 섣불리 뭐라 할 말이 없기도 했으려니와 마음이 무척 착잡했다.
며느리는 백인이고 아들은 아시안, 이제 흑인 아기를 데리고 온다면 인종 전시장을 방불할 것 같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친다. 아들은 환영의 말을 흡족히 해주지 않는 나를 이해시키려 애썼다.
부모가 기를 능력이 없어 불쌍하게 자랄 아이, 데리고 와서 잘 키워주고 싶다고 한다. 아이를 잘 양육시켜 완전한 사회인으로 성장시키는 것에 목적을 두는데 피부 색깔이 좀 검기로서니 하등에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한다.
아들의 생각은 더 할 나위 없이 훌륭하나 아기가 백인이나 아시안이면 자연스러울 터인데, 가족이 제각각 피부가 다를 때에 주위에서 받는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혹시 자라면서 본인이 가족 구성으로 인해 주변 아이들에게 놀림감이나 되지 않을까 하는 기우도 없지 않다.
이제까지 아기 없이도 잘 살았는데-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며느리와 아들은 이미 오래 동안 많은 상담을 거쳐 준비하고 기다렸기에 의지가 확고하다. 더 이상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고 아들이 데려오는 아이를 내 손자로 잘 돌봐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서울 계신 시댁 어른들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작은아들이 아기를 입양할 생각을 한 것은 오래 전부터다. 아내가 음식 앨러지가 심하여 가리는 음식이 많다. 아기를 가지려고 했으나 몸이 약해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 아들의 배려다. 결혼 한지 10년 동안, 자신들도 충분히 노력한 것을 알고 있기에 모든 것을 본인들이 알아서 처리하도록 했다.
2년 전, 그 때부터 입양아가 흑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을 때, 나도 모르게 흑인 아기는 좀 곤란하지 않느냐고 했으나 아들 내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들 내외는 이제까지 가져보지 못했던 자식에 대한 정을 체험하며 새로 입양될 아기로 인해 감사가 넘칠 것이다.
대기업의 부사장 부인인 조안 여사는 자신이 낳은 아들딸이 있는데도 지체부자유 어린이 6명 입양했다. 그중 한국 아이가 3명이다. 남편이 회사 중역이어서 가정 경제를 담당 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말을 했다. 8자녀를 보살피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닐텐데 기쁨으로 감당하고 있는 것을 보며 인류애가 저런 것이구나 했다.
입양의 대부 해리 홀트씨는 1955년에 전쟁 고아와 장애인을 위해 한국으로 건너와 홀트씨 양자회를 세운 분이다. 그가 196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외국 가정에 7만 여명을 입양시켰고 미국내 가정에 1만 8천명에게 새 부모를 만나게 해 주었다.
아들 내외의 용기 있는 선택을 보면서 우리도 이제는 입양아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시야를 넓혀 마음의 눈을 떠야 할 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단일 민족이라는 개념이 강해 입양을 꺼려온 것이 사실이다. 이미 50여년 전에 먼 동양의 조그만 나라에 와서 고아와 장애인을 도와준 홀트씨의 헌신적인 사랑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그들 백인 가정에서도 한국 아이를 입양해 알뜰히 보살피며 따뜻한 부모가 되어 주지 않았는가. 이제 그 사랑을 되돌려 줄 때가 된 것이다. 부디 아들 내외가 기다리는 꿈나무가 튼실하게 잘 자라서 사회의 한 개체로 성장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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