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6회. 중남미의 독립 5. 독립의 배경
중남미 최초의 독립국은 컬럼버스의 첫 기착지이며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이던 Espanola섬(현재의 Haite와 Dominica 공화국)의 아이티였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하고 프랑스가 온통 혼란의 와중이었던 1793년 투생 루베르튀르가 흑인 해방 노예들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프랑스 식민지 주둔군에게 승리를 거둠으로써 독립을 향한 투쟁을 시작하였다. 나폴레옹의 시대가 되자 나폴레옹은 신대륙 경영을 위하여 Espanola섬이 기지로 꼭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2만의 병력을 파견하였으나, 파견된 프랑스군에게 황열병이 만연하여 사기가 형편없이 떨어진 데다 유럽에서의 전쟁이 한층 더 격렬해짐에 따라 Espanola섬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게 되어 프랑스군은 섬의 동쪽으로 철수하게 되었고, 섬의 서쪽 절반에서 투생의 후계자인 데살린이 1804년 아이티국을 건국하였다. 나폴레옹이 유럽에서 정신없이 전쟁에 몰두해 있는 동안 팔자를 고친 당사자는 바로 미국이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인 제퍼슨은 전비에 쪼들리는 프랑스와 협상을 통하여 루이지애나를 단돈 1,500만달러에 매입하였다. 이는 에이커당 4센트에 해당되었고, 이 거래로 미국 영토는 거의 두 배로 늘어나게 되었다.
루이지애나는 1673년 프랑스 탐험가들이 미시시피강을 따라 내려가 도착하게 되었으며, 이를 근거로 1682년 당시 프랑스 국왕 루이를 기리는 뜻으로 루이지애나라 명명하여 프랑스령으로 귀속시킨 지역이었다.
그러나 실제적인 중남미 독립혁명인 에스빠냐로부터의 독립전쟁은 1810년에 시작되어 1824년 페루의 아야쿠쵸 전투를 끝으로 15년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그러면 중남미 독립혁명은 어떠한 배경에서 발생했을까?
첫째, 18세기에 꽃을 피운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이 컸다. 볼테르, 루소, 몽테스키에 의하여 전파된 계몽주의 및 민족주의 사상은 독립혁명의 이념을 배양하는 토양이 되었으며, 특히 통치의 근거를 피치자의 동의에서 구한 루소의 ‘사회 계약론’과 ‘에밀’은 중남미의 복음서 역할을 하였다.
둘째, 미국의 독립과 프랑스 대혁명의 영향이다.
1776년 영국과의 전쟁을 승리고 이끌어 식민지 생활을 청산하고 독립한 미국과, 1789년 발발한 프랑스 대혁명은 식민지인들에게 용기를 부여하였으며, 또한 프랑스의 루이 16세와 왕비 앙트와네트의 처형 소식은 그들을 경악케 하기에 충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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