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인생의 절반을 교회와 함께 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귀한 시간으로 보냈다. 힘든 일상 중에도 믿음으로 새로운 힘을 얻고 용기를 냈으며, 7년 전 미국으로 이민 온 후에는 더욱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며 늘 감사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이곳 이민사회의 교회의 모습은 때로 이해하기가 힘들다. 아마 교회가 신앙생활의 중심이 아니라 이민자의 커뮤니티 센터가 되어서 인 것 같다.
신앙 이전에 외로움의 도피처요, 생활고 해결책을 찾기 위한 중요한 장소가 바로 교회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느꼈던 본질적인 신앙인의 모습이 아닌 생경한 교인들의 모습에 놀란다. 거의 모든 이민 교회에는 터줏대감 같은 원로 장로들이 있다. 이분들은 교회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지나쳐 왜곡된 주인의식으로 자주 교역자들과 부딪친다.
근자에 본인이 출석하는 교회가 속한 교단의 회의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도 많은 교회들이 문제를 호소하였고 그 내용의 대부분은 장로와 목사간의 분규였다. 그런데 하나같이 목사들이 잘못됐다고 몰리는 현상이 나를 당황하게 한다.
왜 모든 교회 분규가 목사들이 잘못하는 것으로 교단회의에서 진행되는지 궁금하다. 이민교회에서 목사는 한국에서처럼 대접받고 신앙생활을 인도해 주는 목자가 아니라, 피고용인의 하나인 것처럼 대우를 받는 것 같다.
거의 모든 원로 장로들은 교단과 밀접해 있다. 교회생활을 오래 했으니 당연한 인맥의 파워인 것이다. 그날 교단회의는 그런 장로들이 정치력을 충분히 발휘하는 향연장 같았다. 그들이 교회의 소유주요, 교단의 소유주들인 것이다.
요즘 본인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20여년간 이 교회를 키워오신 목사도 환송조차 못하고 떠나 보내야 했고 부목사로 교인들의 사랑을 받아오시던 목사도 장로들의 파워게임으로 인해 또 다시 떠나보내야 했었다.
전교인들이 존경하고 사랑하던 목사들인데 떠난후 다시는 본교회를 방문하지 못하고 있다. 그분들의 가슴에 일부 원로장로들이 대못으로 상처를 입혔기 때문이다.
이제 새로운 목사를 맞이하는데 본인들의 마음에 둔 목사가 아니란 이유로 극소수의 원로장로들이 그들의 탁월한 교단 정치력을 이용하여 반대하고 있다.
신임목사가 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교단법의 모호한 틈새를 임의적으로 해석해서 그것이 판결인양 범법자로 매도하는 고도의 전략에 온 교회가 시끄럽다.
과연 누가 교회의 주인인가. 누가 교회의 소유주인가. 교회의 소유주는 예수님이요, 하나님인 것을 우리 모두가 깨달아야 할 때가 아닐까.
유태일/토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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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성도로서 오랜고난으로 많은걸 알게되었고 주님에게 구원과 십자가 좁은길 천국등 여러비밀도 알게 해주셨습니다 한마디로 미국이나 한국은 믿음의성도가 지극히 많지않습니다 믿음은 고난과핍박 환난을받아야 자라고 성숙하고 깊어지는데(만고의이치)너무 풍요하고 세상적으로 문제ㅣ없고 온전한 믿음을 소우할수없는이치입니다 그게사람이고 인간의한계입니다 한번구원영원이나 부끄러운구원에 그나마희망을 갖는 종교적 신앙인들이 경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