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8월8일자 미국신문을 보면 당장 적이 미국에 쳐들어오는 것처럼 지면이 도배질 되어 있다. 월남 앞 바다 공해 상에서 월맹군 초계정이 미 구축함 매독스호를 공격했다는 것이다. 존슨 대통령은 비장한 어조로 국가안보에 관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으며 의회는 곧이어 “어떠한 적의 무력공격에도 즉각 반격할 수 있는 특별 권한을 대통령에게 위임하는 결의를 통과시켰다. 이것이 이른바 미국의 월남전 참전을 합리화시킨 ‘통킹만 사건’이다.
초계정이 구축함을 공격한다? 어딘가 말이 안 되는 소리다. 그러나 국민들은 안보문제에 관한 한 정부 발표를 믿는 수밖에 없다. 확인이 불가능한 사항이다. 더구나 바다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신문사도 어쩔 도리가 없다. 이렇게 되면 정부 발표에 계속 놀아나면서 긴장 고조시키기 게임에 공범으로 참여하게 된다.
통킹만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미 구축함 매독스호가 공격당한 사실조차 없었다. 이는 몇년 후 의회의 조사에서 밝혀졌으며 풀브라이트 상원의원은 “의회의 대통령 월남전 수행 권한위임은 잘못 전달된 정보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무효”라고 주장했지만 이미 그 때는 미국이 병력을 파견한 후였다. 이라크가 대량 살상무기를 제조하고 있다고 발표하여 부시가 의회로부터 전쟁 수행 백지수표를 위임받은 과정이 어쩌면 통킹만 사건과 꼭 닮았는지 신기할 정 도다.
미국 정부가 그릇된 정보로 국민의 동의를 얻어내 전쟁에 참가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국-스페인 전쟁이 대표적인 예다. 스페인의 식민지인 쿠바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나 스페인군이 무력으로 강제진압에 나서자 미국은 쿠바의 미국인을 피난시킬 목적으로 1898년 2월15일 군함 메인호를 아바나에 파견한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메인호가 항구에서 폭파되어 미해군 262명이 전사한다. 온 미국민이 흥분하고 허스트 계열의 신문들이 불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해 드디어 미 의회가 스페인에 선전포고를 한다. 메인호의 침몰 원인은 후일 해군 자체 조사에 의하면 함상 석탄창고에서 불이나 화약고에 옮겨 붙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우물우물 처리되어 지금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스페인 전쟁의 소득은 굉장했다. 미국은 스페인령의 푸에르토리코와 괌을 얻었고 쿠바의 관타나모에 군대를 주둔시킬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되었다. 주둔 명분이 ‘쿠바의 독립을 보호하기 위해서’로 되어 있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보다 큰 소득은 미 극동함대가 마닐라로 쳐들어가 스페인 함대를 격파하고 필리핀을 손에 넣은 사실이다. 미국은 스페인 식민지인 필리핀을 불과 2,000만달러에 사들였다. 이에 격분한 필리핀인들이 봉기하여 미국인 4,234명이 목숨을 잃는 비운을 당했다.
미국의 전통적인 국방정책은 예방전쟁이다. 위험이 닥치기 전 먼저 나아가 위험을 제거한다는 논리다. 부시는 예방전쟁론 지지자다. 2002년 웨스트포인트 졸업식 연설에서 “미국의 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되는 어떤 정부도 일방적으로 타도할 권리를 우리는 갖고 있다”라고 밝혀 필요하면 언제든지 미국이 선제 공격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그런데 ‘미국에 대한 위협’을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대통령의 판단이다. 이 때문에 군사대국의 대통령이 예방전쟁론 옹호론자인가 아닌가는 국가의 운명과 직결된다. 예방전쟁론을 국민에게 설득하다 보면 잘못된 정보를 합리화하여 ‘통킹만 사건’ 발표와 같은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미국과 북한의 긴장에서 우리가 우려하는 것도 바로 이점이다. 역사는 항상 현재형으로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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