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에서 방문하는 후배 정신과 의사들은 고작해야 6개월 내지는 일년의 연수기간을 허락 받고 온다. 일년이라고 해봐야 영어 좀 배우고 아파트 구하고, 학회에 몇 번 다녀오면 지나가는 지라, 연수기간 연장을 원하는데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이 곳 대학교수가 특별히 체류 연장을 권하는 추천 편지를 쓰기도 하고, 본인이 직장 상사에게 사정을 하기도 해서 겨우 2년으로 연장되는 것을 본적이 있다. 뭔가를 제대로 배워 가려면 턱없이 부족한 기간이다.
중국에서 오는 연수생은 몇 년씩이나 연수를 받다가 끝내는 이 곳에 직장을 구해서 영주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 한국식으로 보면 ‘얌체요, 배신자’인 이들이 제 때 귀국하지 않아서 불이익을 당한다는 걱정을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은 없다. 한마디로 중국 정부나 병원, 대학 당국은 한국의 경우보다는 훨씬 느긋한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
잠시 수박 겉 핥기 식으로 배워 가는 것보다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미국 문물에 푹 젖어서 배울 것과 배우지 말아야 할 것까지 구분하는 안목을 갖고 돌아가는 사람이 열에 하나만 있어도 투자한 가치는 충분히 건진다는 그들의 논리를 들었을 때 그들의 ‘만만디’ 대국적 성격을 알 수 있었다.
미국에서 유학·연수하던 중에 자녀를 출산하는 경우, 속지주의를 따르는 미국법에 의해서 자동적으로 미국 시민권을 얻게 된다. 이들은 물론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으니 한국 국적도 갖게 된다. 현행법에 따르면, 이들은 18세 이전에 한 국적을 선택·포기하게 되는데, 이들이 국적 선택을 하기 전까지는 자신·부모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중국적자가 되는 것이다.
최근에는 부모의 의지로 이중국적자가 되는 사람들도 생겼다. 바로 원정출산으로 태어난 아이들이다. 미국에서도 이런 원정출산을 통한 이민자, 노년층 이민자들의 복지 및 의료 혜택과 불법체류자 자녀들의 공교육 제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이민국가인 미국 정부 당국자가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몇몇 약올리는 사람을 벌주기 위해서 선의의 많은 사람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법안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즉 구더기 잡자고 장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즈음에 유독 한국에서만은 몇몇 얌체족들의 자녀를 규제하기 위해서 병역을 마친 후에야 국적 선택을 할 수 있게 하는 새 국적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을 위반하는 자는 한국 국민이나 동포로 간주하지 않고 외국인으로 취급하도록 하는 후속 법안도 마련중이라 한다.
남들은 외국 국적을 취득한 재외 거주 국민들까지도 이중국적을 허용하고 외국거주 영주권자들에게도 참정권을 부여해서 새로운 ‘영토확장’을 도모하는 판에, 모국에서는 국내에 거주하는 자국민들까지도 외국인 취급을 하는 시대착오적인 법을 만들겠다고 한다.
상당한 시간을 요하는 초청이민이나, 상당한 자본을 들여야 하는 투자이민에 비하면, 자연적인 해외 출산이민은 가장 효율적인 이민방법일 수도 있다. 얌체 원정출산을 장려할 수는 없지만, 일부 얌체족을 증오한 나머지, 많은 무고한 해외 출생자들까지도 족쇄를 채우는 졸속·근시안적인 새 국적법은 타당치 못하다. 오랫동안 반이민정 서에 끌려온 모국 정부가 이제는 쇄국정책으로 회귀하려는 것인가? 엄연한 자국민을 ‘외국인으로 취급하겠다’는 법을 만드는 정치인이 큰소리 치는 국가를 들어본 적이 없다.
지금 국적 포기와 포기 취소 사이를 갈팡질팡할 10대 중반의 소년들이 태어나던 시절에는 원정출산이 유행하지 않았다. 또 지금 출생하는 아이들이 성장해서 군대에 갈 즈음에는 남북 통일이 되어 징병제도조차 폐지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고 보면, 새 국적법이 설자리는 조만간 사라질 것이다.
이 기회에 해외동포 영주권자들의 모국 참정권 회복 및 행사가 바로 세계적이고 시대적인 눈을 갖은 지도자들을 가려 뽑는 제도적 장치로 연결되기를 기대해 본다. 특히 이민 정책에는 느긋한 자세로 임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정균희
UCLA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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