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8년 캘리포니아에 백인은 3,000명, 멕시칸 인구는 11만명이었다. 이중 1,000 여명의 멕시칸 지주 엘리트들이 주요 농지, 택지, 행정 요직을 차지하면서 캘리포니아를 지배했다. 그러다가 캘리포니아 금 발견 소문이 퍼지자 불과 일년 사이 백인이 8만명으로 늘어났다. 이 백인들이 미 연방정부의 암시적 후원아래 멕시칸들을 금광, 농·택지에서 몰아내며 캘리포니 아를 독차지하자 멕시칸들은 졸지에 이등국민으로 전락하였다.
이렇게 하여 19세기 중엽이후 이등국민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멕시칸들이 불과 지난 10여 년 남짓 사이에 눈부신 정치력 신장을 하면서 급변하고 있다. 1989년 현 가주 부지사 크루즈 부스타만테가 주 하원의장이 되면서 첫 히스패닉 주요 정치인으로 부상하더니 지금은 가주의 여러 시장, 시의원, 주 상하원, 그리고 연방 의회, 행정, 법조계, 학계에 히스패닉이 진을 치고 있다.
1965년 연방 투표권법이 통과 된 후 1970년대, 1980년대만 해도 히스패닉 정치 의식, 참여도는 매우 저조하였다. 그러나 논평가들은 이들 히스패닉을 잠자는 사자라고 칭하면서 이들이 깨어날 때는 캘리포니아 정치판도가 바뀔 것이라고 하였다.
17일 선거에서 안토니오 비아라이고사가 LA시장에 당선된 것은 과거 10여 년 간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한 히스패닉 정치력의 결정체이다. 심리적으로 멕시칸 아메리칸들로서는 박탈당한 과거를 되찾은 느낌이기도 한 사건이다.
이번 선거가 의미하는 함축성은 매우 깊다. 통상적으로 흑인과 히스패닉은 상호 불신 경쟁 관계에 있다. 상호 연대보다 백인 세력에 합세하여 자기 이익을 취하는 것이 보통이다. 제임스 한 시장이 흑인인 버나드 팍스를 LA 경찰국장자리에서 파면시킨 여파라 하더라도 하여간 흑인 표가 히스패닉 지지로 몰린 것이 비야라이고사를 당선시킨 요인중 하나인 것은 틀림없다. 흑인과 멕시칸 간의 제휴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소수 인종간 정치연대의 새장을 열었다.
이것은 소수민족에게 큰 희망을 준다. 중국계 마이클 우가 1992년 LA시장에 도전했을 때만해도 이런 희망의 전례가 없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고 하여 LA 시장을 아무나 도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LA 시장은 특수요직이다. LA시장으로 성공하면 캘리포니아 주지사 후보감으로 여겨지는 것이 거의 공식화 되어있다. 톰 브래들리, 리처드 리오단이 다 그랬듯이 한시장도 재선했더라면 차기 민주당 가주 주지사 후보물망에 올랐을 것이 분명하다.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또 곧 미국 대통령으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에 LA 시장이라는 자리는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직이다. 로널드 레이건이 그 예다. 미국서 제일 큰 주의 주지사가 대통령 후보 반열에 오르는 것은 상례이다.
비아라이고사도 LA 시장에서 가주 주지사로 이어지는 길을 바라볼 수 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될 경우 대통령도 바라볼 수 있는 사정거리에 들어온다는 의미가 있다.
캘리포니아는 많은 면에서 미국의 전초기지이다. 유색인종이 대다수가 된 큰 정치 실험장에서 산출되는 작품들은 미국을 좌지우지한다.
우리 한인들도 이 민주주의 실천의 장의 참여자로 미국정치를 많이 배워야 하겠다. 실제로 우리 한인사회와 멕시칸과의 관계는 매우 밀접히 얽혀져 있지 않은가. 멕시칸들을 소홀히 보는 일이 없도록 다시 한번 각성해야 하겠다.
이번 선거는 선의의 경쟁 속에서 공생 공존하다 보면 평화적으로 사회질서에 변화를 가져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정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차만재
칼스테이트 프레스노 정치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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