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마사코 왕세자비가 아들을 못 낳는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증에 걸려 한때 자살까지 생각한 적이 있으며 현재 피부병의 일종인 신경성 대상포진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왕실 관계 기사를 일본 언론이 먼저 보도하지 않고 외신이 항상 특종한다는 사실이다. 나루히토 왕자가 직업 외교관인 마사코를 왕세자비로 맞아들일 것이라는 보도도 미국의 워싱턴포스트가 먼저 보도했었다. 일본 신문이 나루히토의 결혼 상대자가 누구라는 것을 몰랐을까.
왕실 뉴스에 관한 한 특종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일본 언론의 기본자세다. 거기에 한술 더 떠 북 치고 장구까지 친다. 마사코비의 임신이 발표되자 아사히신문은 “출산의 무사를 기원한다”는 사설을 실었는가 하면 산케이신문은 호외까지 발행했었다. 어떤 TV는 마사코가 병원에 아기 낳으러 갈 때 뒤따라가며 현장중계까지 했을 정도다. 한동안 왕세자비가 아기를 못 가지는 것이 남자쪽 책임인가 여자쪽 책임인가로 수군수군 했고 인공수정을 시도하고 있다는 외신보도까지 나돈 적이 있는 것을 감안한다 해도 일본 언론이 개인의 임신을 사설로 취급한 것은 지나친 감이 있다.
마사코비는 결혼 8년만에 출산했다. 그런데 아들이 아니라 딸이었다. 그래서 문제가 또 복잡해졌다. 왕실 규범은 남자만이 왕이 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데다 나루히토의 동생인 후미히토도 딸만 2명을 낳았기 때문이다. 현 일본 왕실에는 38년 동안 아무도 아들을 낳지 못하는 불운이 계속되고 있다. 딸은 시집가면 왕족 족보에서 제명할 정도로 왕실 내에서는 여성 지위가 형편없다. 헌법을 뜯어고쳐 여왕제도를 만든다고 하지만 그렇게 되면 여왕의 신랑을 어떤 신분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도 숙제다.
왕실 규범을 고치지 않는 한 현재 상태에서는 나루히토가 왕이 된다면 후계자는 동생인 후미히토(아키시노노미야)가 되고 거기서 대가 끊긴 후 다른 집안으로 왕위가 넘어가게 된다. 이래저래 마사코가 아들을 낳는 것만이 왕실의 위기를 해결하는 첩경이다. 그러나 아들 낳는 것이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아이코 공주(4)도 유산 후 겨우 낳은 딸인데 42세가 된 중년의 마사코가 또 임신한다는 보장은 없다. 일본 여성단체에서는 “여자는 아기 낳는 기계가 아니다”라며 차제에 법을 고쳐 여왕제도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영국은 엘리자베스 1세와 빅토리아 여왕 그리고 현 엘리자베스 2세 등 여성이 왕위에 오르는 전통을 지닌 지 오래지만 일본은 상고시대를 제외하고는 수백년 동안 남성이 왕권을 계승해 왔기 때문에 여왕제도를 시작한다는 것은 왕실 혁명에 가까운 대변화라고 할 수 있다.
동경대 법학부를 다니고 하버드와 옥스포드를 졸업한 후 외교관으로 있다가 왕세자비에 간택된 미모의 마사코는 일본의 백설공주였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성으로 꼽혔었다. 마사코는 처음에는 왕족생활이 자신 없다며 나루히토의 청혼을 거절했으나 “다이애나처럼 왕실외교를 맡는다면 당신의 외교관 경력도 살릴 수 있고 왕세자비 역할도 할 수 있다”는 그의 간곡한 설득을 받아들이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지금은 결혼 전에 약속했던 왕실 외교관 역할은커녕 아들을 낳느냐 못 낳느냐로만 능력을 평가받고 있으니 이처럼 비극일 수가 없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될 조건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마사코와 다이애나의 케이스에서 배운다.
이 사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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