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두 명의 스타가 한꺼번에 나왔다.
‘희 삽 초이’와 박주영이다.
촌놈 최희섭이 연이은 홈런으로 일상에 지친 우리의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풀어주더니 ‘축구 천재’ 박주영이 기적까지 선사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진한 감동의 순간들이다.
최희섭은 메이저리그 중심 타선에 이름 석자를 올리는 것으로도 영광인데 3연타석 홈런에다 경기마다 홈런을 때려내니 자랑스럽기 그지없다. 가슴이 후련하다. 1m96cm의 큰 키,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건강한 미소, 파워 넘치는 타력, 매력이 넘친다.
최희섭이 9회 말 역전 홈런을 날렸던 지난 주말 다저스테디엄 주차장. 경기가 끝났는데도 ‘희 삽 초이’를 외치는 미국인 팬들을 보고 나도 모르게 한인의 자긍심이 뭉클 솟아났다.
‘한국 축구의 구세주’ 박주영도 스타다.
아슬아슬한 고비마다 한 골씩을 선사해 갈증을 풀어준다. 긴 얼굴에 여드름 꽃, 영악한 곳이라곤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어수룩한 10대가 한국 축구를 구해내고 있다. 슛 동작은 얼마나 빠른지 슬로 모션으로 보지 않으면 어떻게 골인됐는지 도무지 알 수도 없다.
스타는 하늘의 별이다. 만인이 소유하고 즐기는 대상이다. 우리는 그들을 통해 대리 만족을 얻고 성취감을 느낀다. 이들 스타들이 가슴 찡한 순간들을 만들 때 우리도 스타가 된다. 그 순간은 값으로 환산할 수 없다.
스타와 함께 했던 감격의 순간들을 잠시 되뇌어 보자.
IMF로 내외의 온 국민들이 지쳐 있던 98년, 4라운드까지도 승부를 내지 못해 하루를 넘긴 US여자오픈 5라운드 11번째 홀, 피말리는 접전 속에 두 번째 샷이 물에 빠진 절체절명의 위기, 하얀 종아리를 드러내고 물 속에 들어간 박세리의 믿을 수 없는 ‘개울 샷’. 박세리의 쾌거는 IMF 5개월째 표류하고 있는 한국호에 새 닻을 올렸고 한국을 구한 ‘금 모으기 캠페인’에 불을 당기는 계기가 됐다.
2002년 월드컵. 온 천지를 뒤흔든 붉은 악마들의 물결, 태극 전사들의 사투, 불끈 쥔 주먹을 하늘로 치켜올리는 히딩크의 골 세리머니.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던 월드컵 4강은 당시 여와 야, 호남과 영남으로 갈기갈기 찢어진 한국을 하나로 묶는 접착제가 됐다.
스타만이 지니는 힘이다.
스타는 하루아침에 탄생되지 않는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숱한 역경과 시련을 거친다. 그들에게는 남다른 노력과 끈기, 불굴의 집념과 근성이 있다. 그래서 그들의 승리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도전을 던져준다.
최희섭도 오늘의 스타가 되기까지 고독한 훈련의 나날을 보냈다. 지금도 그 흔한 컴퓨터 한 대도 없이 눈만 뜨면 배트를 휘두르는 야구생활이 하루의 전부라고 한다.
박주영도 어느 날 잠에서 깨어보니 스타가 된 것이 아니다. 공부도 잘해 줄곧 전교 1등만을 했던 박주영은 ‘공부나 하라’는 부모의 권유를 피해 길에 넘어지고 개울에 빠지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학교 길을 오가며 드리볼한 연습의 결과다.
요즘 타운에 신나는 일이 없다.
많은 샐러리맨들이 남들이 다 누리는 부동산 붐을 제대로 못타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 허탈해하고 있다. 은행가에는 어지러운 스카우트 바람 속에 배반이 난무하고 취업난이 계속되면서 자녀들의 취직문제로 부모들의 한숨소리가 높다.
최희섭의 홈런과 박주영의 그림 같은 골 세례가 이래저래 우울한 타운에 청량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박주영의 역전 드라마 신드롬도 나타나고 있다. 오랜만에 이곳 저곳에서 함성이 터지고 손뼉치는 소리가 들린다. 타운에 활력이 넘칠 때 타운이 건강해지고 경제도 좋아진다.
스타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이다. 스타는 절대 곁눈질하지 않는다. 집중하고 전념한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고 전념할 때 우리도 스타가 된다.
권기준 부국장·경제부장
kj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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