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던 때에는 가깝고도 먼 이웃이라고 하면 의례히 일본을 생각했다. 그러던 것이 미국에서 살다보니 어느 사이엔가 라티노가 일본을 대신하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멕시칸이라고 부르는 그들은 사실 멕시코 뿐 아니라 다양한 국적을 가진 라티노들이다. 사실 한국에서는 말이 좋아 이웃이었지 삶의 현장에서 일본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라고는 좀처럼 드물었다.
그러나 이곳 LA에서는 매일 어디엘 가든 라티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곤 한다. 말 그대로 그들은 분명한 우리의 이웃이다. 그토록 가까운 곳에 있고 같은 공간 속에서 늘 함께 호흡하며 살고 있는 이웃임에도 불구하고 이웃사촌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사는 한인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많은 한인들이 그들을 인격적으로 무시하고 있다고 말하면 나의 편견일까?
마켓이나 식당, 또는 봉제공장 등 어딜 가든 한인들과 함께 일하는 라티노들이 있다. 전에 마켓 내에 있는 한 식당에 식사를 하러 갔다가 우연히 들었던 어느 한인 여자 종업원(종업원인지 주인인지는 분명치 않지만)의 말이 지금도 문득 문득 생각이 난다. 그 여인은 언뜻 보아도 자기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 보이는 라티노를 지칭하는데 연방 ‘얘, 쟤, 저것들’이라는 표현을 하며 라티노들을 무시하는 말을 하곤 했다.
듣기가 참으로 민망해서 일부러 못들은 척 하고 있었는데 그 여인이나 그 여인과 함께 얘기를 하던 사람이나 그들은 모두 그런 식의 표현에 너무나 익숙해 있는 것 같았다. 밥을 먹고 있는 동안 그들끼리 하는 얘기가 들려오는데 그들은 모두 교회의 집사들이었다. 그들이 교회의 집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난 우리 교회의 집사님들도 저렇게 라티노들을 인격적으로 무시하고 함부로 대할까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4.29 폭동은 한인들에게 불만을 품은 흑인들의 쌓인 분노가 한꺼번에 표출된 사건이었다. 지금 라티노들이 한인들을 보는 시각은 결코 곱지 않다. 만일 어떠한 계기가 있어 그들의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면 그때에는 4.29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엄청난 재난을 가져올 것이다. 생각만 해도 두려운 일이다. 과거를 돌아보고 역사를 공부함은 소망 가득한 내일을 위해 오늘을 가치 있게 보내기 위함이다. 쓰리고 가슴 아픈 역사를 겪고도 그 아픔이 가치 있는 것은 아픔을 통해 얻게 되는 값진 교훈 때문이다. 만일 쓰라린 역사를 통해서도 교훈을 배우지 못한다면 과연 우리는 어디서 무엇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며 그 고통과 아픔은 우리에게 과연 어떠한 가치가 있을 것인가?
한인 라티노 커뮤니티 연합회(Korean Latino Community Association/ KOLA)는 사회 각 분야의 상호 이해와 실제적 협력을 통한 양 커뮤니티간의 사랑과 화합을 이루기 위해 크리스천들이 주축이 되어 약 2년 전에 생긴 비영리단체다. KOLA에서는 윌셔 길 홈-디포에 형성이 되어있는 인력시장에서 일 자리를 구하지 못한 라티노들에게 간단한 점심식사와 음료수를 제공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원봉사자를 구하고 있다.
안토니오 비아라이고사의 시장 취임과 함께 LA 는 본격적으로 라티노 시대를 맞고 있다. 가치 있는 일은 대개의 경우 가장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이 된다. 가깝고도 먼 이웃인 라티노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일은 엄청난 일을 하는데 있지 않다. 우리가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자. 이미 멀어져 있다면 멀어진 만큼 그만큼 더 가까이 가자. 가다보면 어느덧 가까운 이웃이 되어 있는 아름다운 그 날을 보게 될 것이다. 한국의 지하철역 어디선가 보았던 표어가 생각이 난다. “작은 것부터, 나부터, 지금부터”
서무영
한인 라티노
커뮤니티 연합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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