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당당히 이기게 해달라고 기원하지 못하고, 왜 주기도문에서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라고 가르치는가?
인간이 약한지라, 시험을 이기기보다는 시험 들어서 고통 할 것이기에 차라리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는 뜻인 것 같다.
춘추 전국시대에 초장왕은 신하들과 함께 한 파티석상에 자신의 귀빈을 불러서 술을 따르게 했다. 그런데 돌연히 일진광풍이 일어나 불이 모두 꺼져 버렸다. 이 틈에 이 귀빈에게 뽀뽀를 한 대신이 있었는데, 이 귀빈은 그의 갓끈을 뜯고서 왕에게 소리쳐 아뢰었다. 왕의 여인을 성 희롱한 죄는 반역에 준 하는 능지처참할 죄였으리라.
그 때에 왕은 명하여 모두 갓끈을 뜯어내어 집어던지게 하고서야 불을 켰다. 귀빈 성희롱 자를 잡지 않고야 말았다.
얼마 후에 초장왕이 정 나라로 쳐들어 갈 때에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쉽게 진군하게 되어 왕이 그 연유를 알아보니 당교라는 부장이 목숨을 걸고 왕이 오기 전에 적군를 물리쳐서 평탄한 진군의 길을 열었다 한다. 왕이 치하하고 상을 주려하니 그는 자신은 귀빈에게 뽀뽀한 죄로 죽었어야 했을 사람이라며, 이제 죽음으로 왕의 은혜에 보답하고 있다고 고했다 한다.
귀빈 희롱 죄로 심히 벌받았었을 죄인이 충신으로 변하는 이 고사의 뒤에는 자신도 신하들도 시험에 들지 않게 하는 초장왕의 덕이 있다.
새 국적법이 한민족을 시험에 들게 하고 있다. 일부 지각 있는 ‘우려의 목소리’까지도 이 법에 대한 오해 때문이라며 ‘무지의 목소리’ 로 매도되고 있다.
새 국적법은 명료한 법이다. 자연 해외출산이나 해외 원정출산을 해서 이중국적자가 된 사람은 5월말까지 한국적을 포기하지 않으면 그 이후에는 병역의 의무를 마치기 전까지는 국적을 선택할 수 없다는 법이고, 그 후속 법은 새 국적법에 충실히 의거해서 그 정한 기간 내에 국적을 포기 한 사람에게는 불이익을 주자는 법이다. 이해 오해의 여지가 없는 법이다. 이런 법을 제대로 만들자면 부모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본인이 성인이 되었을 때 국적을 선택할 기회를 주었어야 했다. 비록 졸렬한 법이지만 입안자들 자신들이 제안해서 통과된 법에 준거해서 합법적으로 국적을 선택/포기한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주려고 후속 법이 입안했다는 것은 이율배반이요 자가 당착이다.
이런 발상은 백년대개와 세계화보다는 국민 정서에 편승하려는 인기전술에서 나온다. 누군가 마구 때려도 좋을 대상을 찾아서, 혼줄을 내주어서 다수의 마음 속의 증오를 보복의 후련함으로 대치해 주는 방법이다.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몇몇 “부폐한” 고위공직자를 때려잡는 것과 더불어 새로운 개혁을 주도하는 인기전술을 구사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기왕에 국민 정서 이야기를 하자면 미국에서는 불법 체류자들에게도 기본적인 의료혜택과 교육의 혜택은 부여하자는 너그러운 정서가 있는 반면, 한국에선 자국민도 국적포기라는 ‘오명’(?)을 붙이고, 외국인 취급으로 불이익을 주자는 강퍅한 정서가 흐른다.
지도자는 부합해야 할 국민정서와 극복해야 할 국민정서를 구분해야 한다. 히틀러는 반 유대 국민정서에 편승해서 유대인 학살을 주도했고, 관동지진 시 한인 학살도 그 시절의 일본 국민정서에 부합해서 일어난 일이다. 불화와 증오로 치닫는 ‘정서 자극 법’을 제안하고 통과시키는 자들 때문에 온 국민들이 시험에 드는 것 같다.
초장왕의 고사를 들지 않더라도, 국가에 빗진 심정과 충성심은 상관관계가 크다. 또 이 애국/충성심은 고정관념이 아닌, 성장하며 성숙과 풍요로 발전할 수 있는 역동적인 것이다. 새 국적법으로 피해를 보는 아이들, 소년들 중에 누가 언제 어떻게 국가, 민족, 인류에 공헌할 줄 알고 미리, 애국·애족의 싹이 자라기도 전에 잘라내려 하는가?
병역과 국적 포기여부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누가 그리고 왜 이렇게 국민, 민족을 시험 들게 하는가?” 물어보는 일이다.
정균희
UCLA 정신과 교수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