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병원 목사로 일한 패트리샤 벌클리는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의 여러 가지 감정을 누구보다 잘 헤아린다. 죽음에 대한 공포, 해결되지 않는 가정 문제, 신앙의 위기 등등. 해병대 장교 출신으로 ‘오늘내일’ 하는 80대 중반의 찰스 라스무센도 이 부류에 속한다. 그는 어느 하루 꿈을 꾸었다. 망망대해에서 항로도 없이 배에 타고 있는 꿈이었다. 그는 두려웠다. 또 하루는 다른 꿈을 꾸었다. 끝없는 바다에서 흥미진진한 항해에 나섰다. 지난번 꿈과는 정반대의 기분이었다. 그는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여행이라는 것이다.
촛불 꺼지고 방이 암흑으로… 죽은 부모와 상봉
망망대해에 나 홀로 항해… 무너지는 건물에 깔려
찬란한 빛을 내던 돌이 인도하듯 계단으로 변해
‘죽음, 끝 아닌 새로운 여정’ 인식으로 평온한 마감
벌클리가 자신의 간접 경험을 통해 ‘Dreaming Beyond Death’를 출간했다. 죽음을 앞두고 사람들이 꾸는 다양한 꿈을 정리한 것이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이를 소개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여정으로의 출발이라는 인식을 하도록 하고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과의 문제점을 원만하게 해결하는 계기로 삼으려는 게 이 벌클리의 바람이다.
벌클리는 환자들을 돌보면서 이들의 꿈 얘기를 놓치지 않았고 이를 토대로 아들 켈리와 함께 책을 엮었다. 아들은 전 세계 꿈연구협회 회장이다. 통상 꿈 연구는 무언가 비범한 것을 찾으려는 사람들에 의해 행해졌으나 벌클리 모자는 꿈을 냉정하게 다루었다. 신비주의로 흐르지 않았다.
꿈 연구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꿈의 해석은 종교, 문화와 관계된다. 고대 중국이나 인도, 그리스에서도 활발하고 진행돼 왔다. 칼 융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꿈을 꾼 뒤 자신의 삶이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소크라테스와 공자도 임종 직전 중요한 꿈 얘기를 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실험을 하려 해도 1~2주일씩 임상실험을 하기 곤란하다. 그래서 이들의 꿈 얘기는 학자들보다는 가족들에 의해 수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과학자들이 꿈 얘기를 과소평가 한다는 뜻은 아니다.
꿈의 내용은 대체로 이러하다. 여행을 떠나거나, 이미 죽은 가족이나 친지를 만나거나, 시계가 멈추는 것을 목격한다. 한 여성의 꿈은 더욱 명료하다. 병실 창턱에 놓인 촛불이 꺼져 방이 암흑으로 변했다. 그녀는 공포에 질렸다. 이내 촛불이 다시 켜졌다.
한 남성은 희한한 꿈을 꾸었다. 파트너와 춤을 추고 있었다. 그런데 파트너가 리번 춤을 추듯 춤이 궤도를 그렸다. 마치 다음에 분명한 계획을 갖고 있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벌클리에 이 꿈 얘기를 한 이 남성은 죽음 뒤에 또 다른 무언인가가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그러나 죽음을 앞둔 꿈이 모두 마음을 달래주는 것은 아니다. 고층빌딩이 무너지면서 그 밑에 깔리는 꿈. 운전사가 없는 차에 타고 있는데 이 차가 도랑으로 처박히는 꿈. 성당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토네이도가 밀어닥치면서 지붕을 부수고 몸이 같이 토네이도에 쓸려버리는 꿈. 이런 꿈을 꾼 환자들은 잠에서 깬 뒤 침대를 주먹으로 치는 등 다소 격앙된 모습을 보인다. 죽음을 이기지 못할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환자들도 결국 꿈 얘기를 털어놓은 뒤 세상일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마음의 평정을 회복한다.
임종 직전의 꿈은 평상시의 꿈보다 한결 드러매틱하다. 죽음을 앞둔 상황은 긴장의 농도가 짙다. 죽음이라는 위기와 두려움의 마음에 깊이 자리하면서 이러한 심리상태를 풀어줄 꿈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그래서 임종 직전 꿈이 강렬하며 꿈에서 깨어나도 마치 현실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임종 직전 꿈은 종종 환자들을 돌보는 사람들에 의해 무시당한다. 당사자나 가족들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이 꿈을 잘 파악하는 것은 환자나 가족들이 죽음에 대해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주기 때문이다. 환자에게는 꿈의 복잡함으로 인한 혼돈을 풀어줄 수 있다.
벌클리 모자는 임종 전 꿈이 신의 존재를 입증한다고 믿는다. 죽어 가는 환자들은 이 꿈을 신앙의 증거로 삼는다. 임종을 앞둔 한 여성 암환자가 신의 존재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었다. 그러나 3일간 연속 이 환자가 꿈을 꾸었다. 신비로운 파란빛을 발산하는 거대한 돌을 보았다. 이 환자는 그 형상을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신성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녀는 또 다른 꿈을 꿨다. 이 돌들이 계단으로 변했다. 그리고 멀리서 금빛이 작렬했다. 그녀는 다음날 아침 벌클리에게 “지금 나를 부른다. 나는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 다음날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평화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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