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년시절을 향도 인천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때 6.25가 터져 인천을 점령한 인민군 선전 선동 부대요원이 어린이들을 모아 놓고 김일성의 노래 ‘장백산 줄기줄기’‘최후의 결전’등을 부른 기억이 난다.
그리고 9.15 인천 상륙 작전 때 그 무시무시한 함포 사격을 받으며 동인천 역 근처의 집 뜰에 파 놓은 방공호 속에서 기적같이 살아남았다. 전쟁이 끝난 후 나는 자유공원(당시 만국공원)아래에 있는 학교에 다니며 맥아더 동상이 우뚝 서 있는 자유공원을 맴돌며 놀았다.
미술 시간이면 으레 자유공원에 올라 도화지 왼쪽에 맥아더 동상을 집어넣고 인천 앞 바다의 전경을 그리곤 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맥아더 동상은 ‘미 제국주의 침략의 상징’이라며 끌어내리겠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한국영화 ‘태극기’를 보면 6.25당시 40여일간 낙동강 방어선 전투의 처절한 공방전 속에 부산이 함락되느냐, 아니면 살아 남느냐의 기로에 서 있던 상황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다시 말해 이 땅이 공산주의 체제로 먹히느냐, 자유민주주의로 살아 남느냐의 운명이 걸려 있었다.
그 때 맥아더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대한민국은 존재하고 있을까. 아마도 대만과 같은 운명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제주도에 태극기를 걸어 놓고 있거나 아니면 제주도도 없을 수도 있다.
당시 부산이 함락되었다면 이승만 대통령은 하와이로 날아가 버렸을 테고, 그 때 상황으로 봐서 박정희 대통령은 아마도 인민군대의 장군쯤 되지 않았을까.
민주 투사인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오늘의 대통령으로 군림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대한 민국은 한반도 역사의 정통성을 지닌 자유 민주주의 국가이다. 상해 임시정부의 정통성이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해방초기 혼란기 모순의 역사도 오늘에 이르는 하나의 길목이었고 박정희 대통령도 오늘을 풍요롭게 살게 한 우뚝 선 지도자였다.
태어나지 말아야 했던 5공, 6공도 우리는 역사의 흐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민주화 투쟁의 일변도 속에서 죽음을 불사한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의 역할도 어느 정도 역사의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 노무현 대통령 주위 코드 인사들의 주장은 오늘의 현실에 맞아떨어지는 이야기들인가. 우리는 우려 할 수밖에 없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 에서도 증오의 대상은 미군과 유엔군이다. 남침한 북한 공산주의자들을 몰아 내기 위해 유엔의 결의 하에 참전한 군인들인데, 영화에서는 이런 역사적 사실들이 사라지고 누가 대한민국의 적이고 누가 우군인지 구별이 없다.
한국 갤럽이 지난 8월초 실시한 의식조사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의 다수는 “북한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겠다는 사람들이 자유공원에서 ‘적화통일 깃발’ 두달 동안이나 휘날리는데도 경찰과 검찰은 구경만 하고있으니 참담한 세상을 보게될까 두렵다.
김일홍/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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