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권 남미 ABC 3국과 스페인 제국
제415회. 스페인 제국 20. 무적함대의 패퇴 4
첫번째 보물행렬의 기습에 실패한 드레이크는 석달 후 다시 보물행렬을 기습하여 수십 마리의 나귀에 실린 보물을 약탈하는데 성공하였다. 스페인인들은 첫번째의 공격이 시마네로스의 공격으로 오인하고 호송 병력을 증강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공격에 나서자 몇 안 되는 호송병들은 전투도 없이 도망쳐 버렸다. 보물을 실은 그의 배가 고향인 폴리머스항에 입항했을 때 종소리가 도시 전체를 뒤흔들었다. 도시민들은 모두 나와 세계 제국을 공격한 용감한 선원을 열렬히 환영하였다. 드레이크가 파나마에서 보물을 약탈하고 귀환한지 4년 후 여왕과 자본가들의 투자금으로 막강한 선단을 조직하고, 스페인 보물선 나포를 노리던 드레이크는 드디어 페루 앞 바다에서 스페인 보물선 한 척을 나포하였다. 나포된 선박에는 막대한 양의 금은과 식민지와의 교역품이 실려 있어 약탈품을 ‘황금색 암사슴’호로 옮기는 데만 꼬박 6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드레이크가 아프리카의 해안을 거쳐 영국으로 귀환했을 때 그는 영웅이 되어 있었으며, 엘리자베스 1세는 드레이크를 만나기 위해 몸소 ‘황금색 암사슴’호를 방문했고, 약탈에 투자했던 투자가들은 4,000%의 배당을 받았다.
드레이크의 업적이 얼마나 대단한가는 여왕의 해적선 방문으로 증명되었으며, 여왕은 축제 분위기 속에서 ‘황금빛 암사슴’호의 갑판에서 열린 디너파티에 해적과 함께 참석했다. 드레이크가 예뻐 죽겠는 엘리자베스는 그 자리에서 그에게 기사작위를 수여하고 공로를 치하하였다.
귀족의 칭호 및 새로 획득한 부의 덕택으로 드레이크는 귀족생활을 즐기게 되었다. 그는 거의 매일 여왕을 알현했으며 약탈품 중에서 고른 수많은 선물로 그녀를 기쁘게 했다. 그는 그녀에게 그의 모험담과 항해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그는 정말 이야기를 잘 하는 이야기꾼이었으며 매력 있고 유머가 풍부한 사내였다. 결혼 안한 여왕과 매일 만나는 바람에 그들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도 여왕의 애인이었을까?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은 없다.
해적에서 귀족으로 신분이 상승한 드레이크는 플리머스 시장과 하원의원을 거친 후 1588년에는 당당히 영국 함대의 부사령관으로서 칼레 앞 바다에서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였으며, 1596년 56세 때 파나마에서 열병으로 사망하였다.
드레이크는 영국에서 영웅 중의 영웅이었고 지금껏 트라팔가르의 해전의 영웅인 넬슨과 함께 해신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