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는 빨간 양말, 올해는 하얀 양말?’
전설적 슬러거 베이브 루스를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한 후 소위 ‘밤비노의 저주’에 시달리던 보스턴 레드삭스는 지난해 무려 86년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감격을 누리며 오랜 저주의 사슬을 풀었다. 하지만 16일 LA 에인절스는 1패후 4연승으로 날려버리고 올해 월드시리즈에 선착한 아메리칸리그 챔피언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이보다 한 술 더 뜬다. 1917년 월드시리즈 우승이후 무려 88년만에 정상에 복귀할 찬스를 잡은 것. 레드삭스의 ‘밤비노 저주’와 시카고 컵스의 ‘염소의 저주’에 비하면 훨씬 일반 팬들에게 덜 알려졌지만 소위 ‘블랙삭스(검은 양말)의 저주’도 그 강도가 결코 만만치 않다.
화이트삭스의 저주가 이처럼 레드삭스나 컵스보다는 약한 것으로 보여진 것은 화이트삭스가 불과(?) 46년전인 지난 1959년 아메리칸리그 페넌트를 차지, 월드시리즈에 나간 적이 있기 때문. 그보다 훨씬 더 장구한 세월동안 월드시리즈 근처에도 못 가봤던 레드삭스나 컵스팬들은 “그 정도면 양호하다”며 화이트삭스를 ‘저주받은 팀’ 축에 끼워주지도 않았지만 화이트삭스팬들은 나름대로 속 터지는 세월을 보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화이트삭스 구단주 제리 라인스도프는 시카고 불스도 소유하고 있는데 언젠가 불스가 따낸 6개 NBA 타이틀을 몽땅 내주고 화이트삭스 월드시리즈 타이틀 1개와 맞바꿀 용의가 있다고 밝혔을 정도니 얼마나 화이트삭스 우승에 한이 맺혔는지를 알 수 있다. 화이트삭스는 1959년 월드시리즈에서 LA 다저스에 2승4패로 무릎을 꿇은 뒤 46년만에 다시 가을클래식 무대에 서게 됐고 전설적인 선수 ‘슈리스(Shoeless)’’ 조 잭슨이 이끌었던 1917년 팀이 뉴욕 자이언츠를 꺾은 이후 88년만에 월드시리즈 타이틀에 도전하게 됐다.
화이트삭스의 저주는 1919년 월드시리즈에서 시작됐다. 소위 ‘블랙삭스 스캔들(Black Sox Scandal)’이라 불리는 월드시리즈 최고 승부조작 사건. ‘타격의 전설’ 타이 캅이 “자신이 본 가장 뛰어난 타자”라고 극찬했던 잭슨을 비롯, 명예의 전당에 오르고도 남을 정도의 실력을 지닌 선수들이 수두룩했던 화이트삭스는 1917년부터 1919년까지 3년동안 거의 천하무적 팀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절대적인 우세가 예상됐던 1919년 월드시리즈에서 신시내티 레즈에 3승5패(당시 월드시리즈는 9전5선승제)로 패했고 추후 이 시리즈 결과가 조작된 것이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잭슨을 비롯한 8명의 화이트삭스 선수들이 야구계에서 영원히 축출된 사건이 ‘블랙삭스 스캔들’이다.
결과적으로 선수들이 쫓겨났지만 사실 이 스캔들은 당시 화이트삭스 구단주 찰스 코미스키가 어쩌면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악의 구두쇠였다는 사실에서 비롯됐다. 코미스키는 당시 선수들이 거의 종신계약으로 팀에 매어 있는 점을 악용, 팀 선수들의 연봉을 형편없이 짜게 묶어두었을 뿐 아니라 식대도 타 팀에 비해 훨씬 적게 지급했고 심지어는 유니폼 세탁비까지도 선수들에게 부담시켰다. ‘블랙삭스’란 말은 스캔들 후에 생긴 것이 아니라 구단주의 횡포에 분노한 선수들이 항의차원에서 유니폼을 빨지 않고 경기에 나섰기에 붙은 것이라고 한다. 이 같은 열악한 환경과 부당한 처우에 분개한 선수들은 도박사들의 유혹에 넘어가 돈을 받고 승부조작에 참여한 것. 올해 화이트삭스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해 무려 88년 묵은 유니폼의 검은 ‘때’를 깨끗이 씻어버릴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김동우 기자>
danny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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