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애틀 멕시코 농구리그, 이민 초년생들의 길잡이 노릇 톡톡
히스패닉 인구 10년래 급증…전문직 진출 모색 젊은이도 늘어
미국에서 히스패닉이 ‘무소부재’의 존재가 된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농장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마켓의 주방이나 푸주간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한국식당에서‘잔반’을 처리하는 사람들도 대개는 한인들이 히스패닉으로 부르는 멕시칸 인부들이다.
멕시코는 축구의 나라이다. 한국청소년 축구 4강 신화와 한국의 월드컵 출전 첫 골이 떠오르는 등 멕시코엔 다른 스포츠 종목이 전무할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11명이 모여야 하는 축구보다는 5명만으로 경기가 가능한 농구의 인구도 만만치 않다.
일주일 내내 고된 노동을 마친 200여 젊은 멕시코 이민자들은 매주 일요일 다운타운 인근 허름한 맨 땅 농구코트에 모여‘그들만의 리그’를 펼친다.
이들은 그냥 동네농구 수준이 아니라 24개 팀이 정해진 스케줄대로 펼치는 제대로 된 토너먼트를 벌인다. 실력도 농구에 관한 한 타인종의 추종을 불허하는 흑인들과 견줘도 달리지 않을 정도로 현란하다.
하지만 이곳에는 선수들과 응원 나온 가족들 외에도 관중 아닌 관중이 많다. 일반 생활정보는 물론‘어느 회사에 일자리가 났다’‘어느 업소 월급이 더 좋다’는 구직정보까지 얻을 수 있는 ‘열린 커뮤니티 공간’으로 자리 잡으면서 구경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버스 타는 법, 그로서리를 가장 싸게 구입할 수 있는 방법 등 소소한 정보에서부터 신분도용 당하지 않는 법, 자녀를 학교에 등록시키는 법 등 살면서 반드시 필요한 모든 정보를 농구장에서 얻는다. 학부모들은 끼리끼리 모여 입학 전 무료 예방접종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어디며, 선생님 선물로 뭐가 적당한지 등 즉석 육아 교실을 펼치기도 한다.
농구 경기장을 가장 열성적으로 찾는 이들은 역시 고향을 갓 떠나온 신참 이민자들이다. 대개 영어를 전혀 못하는 불법체류자들인 이들은 막일로 생계를 삼는다. 이들은 코트에서 ‘푸트라’‘레예스’등 자신이 살던 동네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농구선수들을 향해 소리를 질러대며 일주일 내내 주눅들은 심신을 이완시키고 향수도 달랜다.
멕시코시티에서 10년간 프로농구 선수로 활약한 레티시아 모랄레스도 그중 한 명이다. 남편 및 어린 자녀들과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그녀는 농구코트에 나가 보라는 이웃들의 권유에 경기장을 찾았다가 이제는‘엄한 여자 심판’으로 성가를 드높이고 있다. 매주 젊은 남자선수들과 함께 뛰면서 막혔던 가슴이 풀리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면서 미국 생활에 자신감을 얻었다고 그녀는 말한다.
워싱턴주의 히스패닉 주민은 전체의 9%가량으로 지난 10년 사이 2배가 늘어날 정도로 소수계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양적으로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성장했다. 많지는 않지만 마이크로소프트나 보잉 등 대기업 취업자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으며 커뮤니티 칼리지나 전문대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설계하는 젊은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네 명의 형제들과 4년 전 라티노 농구 리그를 창설한 프랜시스 퀴로즈도 그 중 한 명이다. 멕시코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도 이탈리안 식당에서 접시닦이로 첫 직장을 잡은 퀴로즈는 시간 당 6.50달러를 주는 직장을 4일 만에 때려 치웠다.
그후 케이터링 회사에 취직해 어엿한 중간 매니저 급 간부사원이 된 퀴로즈는 벨뷰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컴퓨터를 공부하며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을 모색하고 있다.
퀴로즈 형제들은 농구리그가 멕시코 이민사회의 대표적인 스포츠 이벤트로 자리잡자 콘크리트 맨 땅이 아닌 나무바닥에 천장이 높은 체육관을 찾고 있다. 다른 농구선수들도 언젠가는 폼 나는 농구코트에서 멋진 덩크를 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며 오늘도 열심히 맨 땅을 누비고 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