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작은 시집 한권을 선물 받았다. 거기에 이런 시가 있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인숙과 같다/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기쁨, 절망, 슬픔/ 그리고 약간의 순간적인 깨달음 등이/예기치 않은 방문객처럼 찾아온다 …”
13세기의 회교 신비주의 시인, 잘랄루딘 루미가 남긴 ‘여인숙’이라는 시의 첫 부분이다. 그는 “그 모두를 환영하고 맞아들이라”“누가 들어오든 감사하게 여기라”며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모든 경험에 가치를 부여했다.
시를 읽으면서 ‘여인숙’을 인간보다는 우리의 삶이라고 한다면 더 편하게 읽히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인생이라는 ‘여인숙’에는 참 많은 손님들이 불쑥 불쑥 찾아든다. 다사다난(多事多難)이다. 이제까지 살아온 날들이 그랬고, 새해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새해에는 좋은 손님들, 반가운 손님들만 찾아왔으면 하는 바램으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을 주고받는다.
우리가 삶이라는 ‘여인숙’의 문을 활짝 열고 맞아들이고 싶은 손님은 어떤 손님일까. 전통적으로 ‘복이 많다’고 할 때 우리 조상들이 꼽은 오복(五福)은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이었다. 오래 살며, 재물이 많고, 심신이 건강하고 편하며, 덕을 베풀기를 즐겨하다가, 제 명을 다해 편히 죽는 삶을 복된 삶으로 여겼다. 삶 전체를 아우르는, 농경사회 다운 느긋함이 느껴진다.
요즘은 “부자 되세요”가 “새해 복 많이……”를 대체할 만큼 노골적으로 돈의 비중이 커졌다. 그것도 로토 잭팟이 터지듯 단번에 일어나기를 바라는 조급함이 강하다. “올해는 돈 좀 벌었으면…”“좋은 직장을 잡았으면…”“멋진 신랑감을 만났으면…”등 새해를 맞아 바라는 소망의 내용들을 간추려 보면 결국은 돈 많이 벌어 잘 살고 싶은 욕심으로 이어진다.
돈복이 쏟아지고, 명예, 지위 같은 손님들만 찾아들면 ‘여인숙’의 행복은 보장될까. 돈이나 명예, 지위는 분명 반가운 손님들이지만, 칼날에 묻은 꿀과 같은 이중성이 있다. 달콤함에 너무 빠져서 꿀을 핥다 보면 혀를 상하게 된다. 호사다마(好事多魔)이다.
불교설화에는 쌍둥이 자매 이야기가 있다. 암야천과 실상천이라는 여신들로 이들은 항상 붙어 다니는 것이 특징이다.
어느날 한 집에 예쁜 여인이 찾아와 하룻밤을 재워달라고 부탁을 한다. 실상천이다. 주인이 “뭘 하는 누구시냐”고 묻자 여인은 재물, 부귀. 장수 같은 복을 갖다 주는 천신이라고 대답을 한다. 주인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어서 들어와 쉬시라”며 반가이 맞아들인다.
그런데 곧 바로 또 다른 여인이 문을 두드리며 쉬기를 청한다. 동생 암야천이다. 생김새도 추악한 그 여인이 자신은 ‘재앙을 가져다주는 악신’이라고 소개하자 주인은 일언지하에 거절을 한다. 그러자 암야천이 말한다.
“우리는 쌍둥이로 항상 붙어 다녀야 하기 때문에 천신이 있는 곳이면 나도 함께 들어가야 합니다”
행운과 재앙이 손에 손을 잡고 다닌다는 이야기는 가슴에 새겨둘 필요가 있다. 복이라고 반긴 것이 나중에는 오히려 불행을 초래하고, 떠밀어내고 싶을 만큼 불운으로 보이던 일이 행운으로 드러나는 경우들은 종종 있다. 인생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보다는 일어나는 일들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행/불행, 성공/실패가 갈리곤 한다. 찾아오는 손님들도 중요하지만 손님을 맞는 ‘여인숙’ 주인의 자세가 더 중요하다.
잘랄루딘 루미의 시는 이어진다.
“설령 그들이 슬픔의 군중이어서/그대의 집을 난폭하게 쓸어가 버리고/가구들을 몽땅 내가더라도/ 그렇다 해도 각각의 손님을 존중하라 …그대를 청소하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새해에는 또 어떤 일들로 한해가 채워질까. 또 다시 주어지는 새 출발의 축복이다. 새해에는 어떤 일이 닥치든 복으로 만드는 지혜를 우리 모두 가졌으면 한다.
“새해 복 많이 만드세요”
권정희 논설위원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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