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희봉(수필가, 환경엔지니어)
두만강은 금단의 강물이었고 죽음의 흐름이었다. 그 금단의 강물을 아들과 남편이 건너갔다. 그리고 돌아올 무렵에 강 쪽에서 개가 몹시 짖어댔다...
안수길의 소설 북간도는 이렇게 비감하게 시작된다. 1879년 대 흉년이 함경도와 평안도를 휩쓸었던 시절, 굶주린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간도 땅으로 건너갔다. 그들은 강대국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 속에서 조선사람으로 살아 남기 위해 처절한 투쟁을 벌여야했다. 이 한복 일가 4대를 비롯한 이주민들의 고되고 서러운 삶이 대하소설 속에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
간도(間島).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낀 섬 모양의 만주 땅이다. 중국인들은 이곳을 청 나라를 세운 여진족의 발상지라고 타민족의 이주를 막았다. 그러나 간도는 우리 조상이던 부여가 훨씬 먼저 자리 잡은 곳이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도 이곳에서 났다. 사실 간도는 고조선, 발해를 거쳐 우리 민족이 3300년간이나 지배한 땅이다. 지금도 이 곳에선 경상도 가야지방에서 출토된 청동 솥과 똑 같은 유물들이 나온다.
간도 땅을 적시는 송화강(松花江)은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해 오천리(1,960km)를 흐른다. 길림성과 흑룡강성 너른 평야를 지나 러시아 아무르강과 합한 뒤 동해로 빠져 나온다. 중국 여섯 번째 큰 강으로 만주어 원음이 송알라울라, 천지에서 나와 만 갈래로 갈라진다는 뜻이다. 송홧가루가 강을 하얗게 덮으며 떠내려온다는 우리 선조들의 옛 젖줄. 그러나 이젠 남의 땅이 되어 민족의 설움이 눈발처럼 흩날린다.
「여기는 송화강/ 강물이 운다아/ 에잇 에잇 어서 노저어라/ 아 배야 가자/ 강물만 우더냐/ 장부(丈夫)도 따라 운다」. 1935년 만주에 머물던 파인(巴人) 김동환이 노래했다. 조국을 떠나 어디론가 노 저어 나아가는 사나이 굳센 마음이지만 빼앗긴 나라를 돌아보며 흐르는 눈물을 감출 길 없다.
지난 11월 말, 송화강에 솔향 내음 대신 시커먼 벤젠이 스며들었다. 길림성에서 화학공장이 폭발, 송화강이 오염되는 대규모 환경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인구 천만의 하얼빈과 러시아의 하바로프시크시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기준치의 백 배가 넘는 80km의 벤젠 오염 띠가 얼음장 밑에서 흘러가고 있다.
벤젠은 독성이 강한 발암물질이다. 플라스틱 합성세제, 살충제 등, 많은 화학제품의 원료로 사용된다. 벤젠은 간과 콩팥에 치명적이고, 장기간 노출되면 백혈병을 유발하기도 한다.
영하 20도 추위로 강물이 얼어붙어 흐름은 느릴 수밖에 없다. 당장 수천만 인구의 식수 취수가 금지되었다. 벤젠제거 처리제를 살포했으니 더 많은 오염 물질이 강바닥에 가라앉고 있다. 내년 봄 강물이 풀리면 토양오염 등 재앙의 후유증이 엄청날 것이다. 호랑이와 두루미의 서식지인 이 지역의 생태계파괴도 큰 걱정이다. 한국일보 위성 사진을 보니 벤젠으로 오염된 검은 강물이 독버섯처럼 얼음 덩어리와 함께 흘러가고 있다.
중국의 환경오염 사건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세계의 공장으로 등장한 중국은 아직도 개발과 성장만 중시할 뿐 환경오염 방지는 뒷전이다. 도시의 50%이상이 산성비의 피해를 보고있고 양자강등 중국 7대 하천의 30%가 썩은 물이나 다름없는 5급수로 전락했다. 서해로 흘러드는 하천의 80%가 오염되었다는 조사도 있다.
이젠 환경오염이 당사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황사처럼 이웃 나라에 주는 피해가 심각하다. 그럼에도 중국은 비협조와 은폐로 일관하고 있다. 「아 배야 가자/ 온 길이 천리나/ 갈 길은 만리다/ 산을 버렸지 정이야 버렸나」지구의 오염방지를 위해 갈 길은 아득히 멀다. 몸은 비록 떠났지만 우리 민족의 옛 터전인 간도 땅에 대한 정(情)은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래서 송화강이 아프다니 우리 마음도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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