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를 위하여 그녀는 머리카락을 뽑는다
대머리를 위하여 그녀는 음모를 잡아뜯는다
대머리를 위하여 그녀는 겨드랑이 털을 깎는다
검은 털이 수북하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그녀는
추억 속의 벗겨진 머리가죽 말라붙은 가죽 위에
털들을 꼼꼼히 심는다 대머리가 만족할 만한 가발을
만들기 위해 촘촘히 바느질한다 비가 거세게 내리고 있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그녀는 완성된 가발을 가지고
대머리에게 간다 진짜 머리털보다 더 진짜 같은 가발을
대머리에게 준다 이걸 만드느라 일찍 오지 못했어요
대머리는 가발을 던져 버린다 기다리느라 비를 너무
많이 맞았어 머리가 불어서 그 가발은 이제 나에게
맞지 않아 대머리의 육체 가득 출렁이는 빗소리가 들린다
그녀가 공들여 만든 대머리를 위한 가발이
찢겨진 우산처럼 빗길에 버려져 있다.


성미정(1967- ) ‘대머리와의 사랑’전문


머리카락과 은밀한 곳에 있는 털까지 뽑아 가발을 만든다. 벗겨진 머리, 말라 비틀어진 그 대머리 같은 아픈 추억을 지우고 슬픔 같은 빗줄기를 차단하고 싶어서인데 여태토록 비를 맞고 서서 기다리던 그 대머리, 통통 불어나서 가발이 맞지 않는다는구나. 빗나간 정성은 찢겨진 우산처럼 빗길에 버려지고 아픔의 추억은 계속 출렁이는 소리만 내고 있는 현실이다.

문인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