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나이 이제 서른 두 살. 저를 낳아 주신 부모님을 찾는 일은 어쩌면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내년에 한국에서 입양인 모임이 크게 열리는데 꼭 방문할 계획입니다.”
마이크 샌더스씨(사진)는 “부모님을 찾아 보고 싶다는 생각은 사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특별한 계기는 없다”고 했다.
한국말도 모르고 한국 역사, 문화 모든 게 생소할 뿐이지만 살아오면서 자신이 미국사람이기 보다는 한국 사람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생부모를 만날 수 있을 지, 또 만난다고 해도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막연하기만 하지만 핏줄이기에 그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마음이 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샌더스씨는 “생부모에게 분노도 미움도 없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 사회가 매우 가족 중심이라고 들어왔는데 자기 자식을 그렇게 쉽게 해외로 입양시켜버리는 풍토가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다.
어릴 적 이름이 김영철(본명인지 확실치 않다)이던 샌더스씨는 고아원에 있다가 1976년 12월24일 메릴랜드에 거주하는 윌리엄 스테이튼 토머, 앤 화자 토머씨 부부에게 입양됐다. 양아버지는 당시 육군 대위였고 어머니는 한국계 여성이었다.
그러나 첫 양부모들과의 삶은 순탄하지 못했다. 그는 11살 때 포스터 홈으로 옮겨졌고 고등학교 졸업 후 부터는 혼자 살고 있다.
샌더스라는 이름은 본인이 스스로 택했다.
기록에 의하면 샌더스씨의 본적은 경기도 인천시 남구 옥련동 산 85번지, 입양될 때의 주소는 경기도 인천시 북구 십정동 산 47-1번지.
마지막 한국 주소가 고아원의 주소인지 생부모의 주소인지 확인해 보지 못했다. 30년 전의 일이라 안타깝게도 고아원 이전의 기억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샌더스씨는 막 미국으로 건너오기 위해 여권용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 사진을 꺼내 보이며 “과거와 연결시켜주는 유일한 사진을 다행히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DC에 거주하며 케네디센터에서 컴퓨터 일을 하고 있는 샌더스씨는 벌써부터 한국 여행의 꿈에 부풀어 있다.
한국에 가면 전국 여행도 하고 음식도 맛보고, 사람도 만나면서 자신의 뿌리를 다시 확인해 볼 계획이다.
기회만 된다면 일자리를 잡고 당분간 머물며 ‘한국인’으로 살아볼 참이다.샌더스씨는 “한국말 교재도 몇 권 있고 인터넷에서 자주 한국 관련 정보와 자료를 수집한다”며 “예절과 관습이 종류도 많고 미국과 많이 다르다는 말에 약간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문의 (202)516-8726, (703 )731-8244 마이크 샌더스(김영철)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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