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수필가, 환경엔지니어)
「바람 부네/ 바람 가는데 세상 끝까지/ 바람 부는데 나도 갈래// 햇빛이야 청과 연한 과육의 수태를 시키지만/ 바람은 과원 변두리나 슬슬 돌며/ 외로운 휘파람이나마 될지 말지 하는 걸// 이 세상 담길 곳 없는 이는 전생이 바람이든 게야/ 바람이 의관 쓰고 나들이 온 게지//
바람이 좋아/ 바람끼리 훠이훠이 가는 게 좋아/ 헤어져도 먼저가 기다리는 게 제일 좋아// 바람불면 바람 따라 나도 갈래/ 바람 가는데 멀리 멀리 가서/ 바람의 색시나 될래」 (김남조 - 바람)
훠이훠이 떠도는 바람이 좋아, 기둥서방 같은 그 바람기를 알면서도 바람의 색시가 되고파 하는 여인. 그 철없는 여심이 조금은 가엽다. 여인은 아는지 모르지만 바람의 색시가 되는 것은 햇빛의 시댁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바람은 해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바람이 해의 아들인 이치는 이렇다. 햇볕은 적도 위에 뜨겁게 내려 쬐고 극지방엔 미미한데 적도 열을 받은 더운 공기가 추운 극지방으로 흐르는 것이 바람이다. 만약 지구가 자전하지 않는다면 바람은 영원히 적도에서 극지방, 한 방향으로만 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잘 알려진 대로, 지구는 23.5도 기우뚱 경사진 축을 중심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돈다. 그래서 지구엔 3개의 대규모 항풍(恒風)이 늘 방향을 달리해 부는 것이다.
3대 항풍은 무역풍, 편서풍, 그리고 극동풍이다. 무역풍(貿易風)은 적도의 뜨거운 공기가 항상 위로 상승하기 때문에 그 빈곳을 채워주느라 적도 쪽으로 부는 바람이다. 단지 지구 자전 때문에 동에서 서로 분다. 무역풍이라 부르는 이유는 돛을 단 옛 무역선들이 이 바람을 타고 순항했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편서(扁西)풍은 북미대륙이 있는 위도 30-60도 사이에서 끝임 없이 부는 서풍이다. 추운 극지방에서 부는 극동풍은 편서풍과는 거꾸로 동에서 분다.
흥미로운 건 옛 중국 사람들은 바람을 벌레의 아비로 알았다. 이는 바람 풍(風)자를 뜯어보면 안다. 무릇 범(凡)과 벌레 충(蟲)의 결합인데, 곧 모든 벌레는 바람 때문에 생겼다고 믿었던 것이다. 벌레는 사면팔방에서 오는 바람을 하루에 한 방향씩 쐬어 8일만에 탄생한다고 알았다. 이런 연고로 ꡐ모든 벌레ꡑ란 뜻인 풍(風)자는 바람의 의미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들어와 바람은 더 이상 하릴없는 건달이 아니다. 벌레의 아비도 아니다. 지구의 생존이 달린 미래에너지의 총아로 떠오르고 있다. 무궁무진한 천연자원이요, 석탄이나 석유같이 공해를 일으키지 않는 청정에너지원이다.
1메가와트(MW) 풍차 하나로 바람을 추수(秋收)하면 1년에 3백 가구를 불 밝힌다. 게다가 약 1500톤의 이산화탄소와 황산가스의 발생을 줄인다. 최근 남가주에 세워지는 415피트짜리 최신 풍력터빈은 3MW 출력으로 2,200가구의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다.
현재 미국의 풍력에너지는 1만 MW에 불과하다. 그러나 2020년이 되면 10만 MW 출력에 2천5백만 가구가 바람의 혜택을 입게된다. 전 미국 에너지생산량의 6%다. 선두주자인 덴마크는 벌써 총 에너지의 20%가 풍력이다.
물론 풍력에너지가 만능은 아니다. 출력이 고르지 않아 보조발전시설이 필요하거나 새들이 치어죽는 결점들이 있다. 그러나 최근 시설보완으로 보조발전 필요성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풍차에 의한 조류치사율도 자동차에 비하면 1%도 안되지만 개선되고 있다.
최인호는 소설, <내 마음의 풍차>에서 풍차를 거듭남과 희망의 상징으로 묘사했다. 바람이 인간들의 허위와 위선을 풍차에 넣고 갈아 찬연한 곡식으로 탈바꿈하는 비전을 그리고 있다. 철없어 보이던 바람의 색시가 사실은 누구보다 먼저 바람의 됨됨이를 알아보았었다는 생각이 든다. 바람(風)은 우리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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