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란<수필가>
두 달이 넘는 아이들의 긴 여름 방학이 끝났다. 방학이 시작 될 즈음에는 아이들도 나도 많이 지쳐 있었는데, 방학 동안은 학기 중의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재충전을 했던 시간들이었다. 아이들과 집에서 책도 읽고, 캠핑도 몇번 다녀 오고, 북쪽 해안 마을 맨도치노 바닷가 위, 오레곤 주 접경까지 올라가서 몇 번인가 가려고 별렀던 레드우드 국립공원 숲 속 길도 걸어보면서, 그렇게 아이들과 나는 여름을 보냈다
주말이면 자주 바닷가에 갔었다. 유난히 무더웠던 이번 여름, 아프리카 사람들이 왜 그리 가난할 수 밖에 없는지 체험했던, 정신이 멍하고 도무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던 무더위, 그 땅에 내가 태어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참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올 여름이었다.
어린 시절 여름 방학에는 낚시를 좋아하는 아버지 때문에 작은 아버지와 사촌들과 함께 호수로 자주 놀러 가고는 했었다. 많은 여름 날들을 보냈던 호숫가…그러고보니, 산호세에 오기 전 내가 2년 동안 살았던 미네소타 주의 수풀 우거진 여름도 참 싱그럽고 아름다웠다. 어디를 가나, 빙하가 녹아 내려 만들어진 맑은 자연 호수가 많아 여름이면 친구들과 작은 배를 빌려 낚시를 하고는 했었는데, 그 아름다운 도시에서 이십대 청춘의 대부분을 보낸 남편은 가끔 그 곳을 그리워한다.
늘 우리 형제들에게 웃으면서 괜찮다며 큰 소리 한번 안 치셨던, 여름날 나무 그늘 같던 아버지, 야식 거리를 꼭 사들고 집으로 들어 오는 아버지를 밤 늦게까지 기다렸던 나와 형제들 처럼, 저녁이면 아이들은 차고 문을 열고 집 앞에서 자전거나 스쿠터를 타면서 기다렸다가 남편이 집에 오면 졸라서 동네 슈퍼로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가고는 했다.
내가 남동생들과 매일 붙어서 잘 놀다가도 싸우고 울고 늘 아비규환 이었던 것 처럼, 나의 아이들도 두 달 넘는 긴 방학 내내 하루도 안 빼 놓고 싸워서 나의 혈압을 오르게 만들었는데, 그러다가도 얼굴에 하얀 눈물 자욱이 채 마르기도 전에 뒷마당의 스프링쿨러를 틀어 놓고 둘이 깔깔거리며 집을 뛰어 다니면, 밖에서 키우는 개 까지 같이 덩달아 뛰며 목청껏 짖어 대서, 조용한 나 혼자만의 시간이 아쉽기도 했었다.
여름 방학 내내 빈둥거리며 먹고 놀아서 다시 학기 공부를 시작할 힘을 얻은 아이들은 들판의 옥수수 처럼 키도 부쩍 자라고 살이 올라서 다시 학교로 향한다.
오랫동안 친분있던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퍼하는 일이 유난히 많았던 올 여름, 힘겨워하는 그들을 보며 세상이 최고 가치를 두는 부, 명예, 성공 …이런 것들 다 필요 없고,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굵고 짧은’ 불꽃 같은 삶보다는 그저 ‘가늘고 길게’ 살면서 그들 가까이에서 사랑을 나누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이 나의 새로운 소망이 되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개똥 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마음에 와 닿는 성경 구절, 좋은 시 한편, 아름다운 노래 한 곡, 바라보면 꿈 꾸게 만드는 그림, 푸른 바다, 들판에 무더기로 피어 있는 이름모를 작은 들꽃들, 친한 아줌마들과 만나서 떠는 수다, 저녁에 친구들 불러서 같이 먹는 밥, 아이들의 웃음 소리…나와 가까운 사람들과 지지고 볶는 평범한 일상의 작은 것들에서 천국을 발견하며, 지상에서의 온갖 복을 누릴수 있게 해 주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에 감사함을 느낀다.
시편 중의 ‘…사람이란 그 세월 풀과 같아 들의 꽃 처럼 피어나지만 바람이 그를 스치면 이내 사라져 그 있던 자리조차 알아내지 못한다…’ 이 구절을 되새겨 보며… ‘지금’ ‘여기’ 이 순간의 행복을 느꼈던 올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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