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간다. 그 흐르는 세월을 한 스타일리스트는 철따라 바뀌는 여인들의 옷차림에서 느낀다고 했다.
바빴다. 아니 그 보다는 정신없이 지냈다는 게 옳겠지. 한낮의 햇볕은 아직도 여름을 노래한다. 사시의 변화가 없다. 그 가운데 매일 같이 프리웨이의 정글을 누빈다. 계절의 변화조차 못 느끼는 단조로운 일상이다.
‘산중에는 책력이 없으므로 해가 감을 아지 못 한다’- 세속을 떠나 살던 한 은자가 남긴 시구다. 그 독백이 역의 표현으로 들린다. 세월의 무상함이 너무나 처절히 느껴진다는.
올해도 또 등장했다. 빨간 냄비다. 스산한 거리의 소음 속에 울려 퍼지는 자선냄비의 종소리…. 문득 세월이라는 걸 느낀다. 벌써 연말이 다가 온 것이다.
1891년으로 기록된다. 자선냄비의 종소리가 처음 울려 퍼진 해로. 겨울바다에서 난파당한 배가 샌프란시스코 부근해안에 정박했다. 굶주림과 추위에 떠는 승객들은 인근 구세군 회관에 수용됐다.
어떻게든 먹여야 한다. 슬픈 성탄을 맞게 된 이들과 도시빈민들을. 구세군 사관은 갑자기 한 생각이 떠올랐다. 옛날 영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사용됐던 방법이었다.
거리로 나가 큰 쇠솥을 내걸었다. 그리고 이렇게 써 붙였다.
“이 쇠솥을 끓게 합시다.”
불우한 이웃들에게 따듯한 식사를 제공하자는 호소였다.
이듬해에 그 자선냄비가 내걸린 곳은 30군데로 늘었다. 그리고 6년 후에는 이 냄비를 통해 미국전역에서 15만 명의 불우이웃이 따뜻한 식사를 대접 받았다.
빨간 냄비가 또 내걸렸다. 날씨는 여전히 따뜻하다. 그 종소리에서 그러나 겨울이 느껴진다. 겨울을 재촉하는 날씨, 그 시즌이 되면 등장했던 것이 이 빨간 냄비에의 추억이기 때문이다.
군고구마가 냄새가 난다. 군밤이 떠올려진다. 손이 시려 두 손을 호호 불며 종치던 소년의 모습이 생각난다.
올해로 벌써 몇 번째 보는 빨간 냄비의 등장인가. 헤아리기가 힘들 정도다. 까마득히 세월이 흐른 것이다. 그 세월동안 그 냄비에는 그런데 몇 번 손을 넣었던가.
어깨를 잔득 움추린 채 자선냄비의 종소리를 애써 외면하며 지나던 거리의 군상들. 그 모습이 갑자기 오버랩 된다. 그게 누구의 모습일까.
감사의 계절이다. 이 계절이 유독 춥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주변의 작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먹고 마시며 즐기는 풍경을 어둠 속 창문을 통해 우두커니 바라볼 수밖에 없다.
빨간 냄비를 통해 올해에는 훈훈한 나눔의 정을 실천해야겠다. 한 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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