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경(주부)
핫메일, 패스워드, 로그 인, 클릭. 반가운 친구의 메일이 와 있다. 지난 달 북한이 핵 실험했다기에 군대 가 있는 아들 때문에 끌탕을 하고 있을 서울의 친구가 염려되어 위로의 메일을 보냈을 때 달랑 ‘휴가 안나와 좋다----괄호 열고 전쟁나면 군대가 제일 안전하댄다 괄호 닫고’라는 답신을 보내 미소 짓게 만들더니 이번에는 주리주리 사연이 길다. 우리 세대가 시어른을 모시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고 또한 더 늙어서는 자식들의 공양을 못 받는 첫 세대가 될 것이라는 요지의 사연이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지면을 통해 말해도 되려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재미로 적어 보자면, 한국의 무슨 조사기관에서 S대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부모님이 몇세까지 사셨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65세가 적당하다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별 영양가 없는 조사가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내 나이 꽃다운 이십이었을 때 사오십쯤 되면 무슨 재미로 살까 상상이 되지 않던 기억이 있으니까 그런 시선으로 보자면 아이들을 이해를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우리 부모님은 늘 100살은 넘게 사셨으면 했었지만 말이다.
고교시절 물리를 가르치셨던 선생님께서 본인은 절대로 자식 안 낳겠다고 하시면서 인생은 고해인데 자신으로 인해 또 하나의 인생을 그 험난한 바다에서 헤엄치게 할 수 없다고 하셨던 것이 생각난다. 그 말이 멋져 보여 나도 그래야지 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자식 낳고 커가는 것 지켜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지난 연휴에 이웃집에 나들이 갔던 아이가 밥 먹고 가라고 붙드시는 아주머니의 말씀에 ‘우리 엄마는요? 나 없으면 라면 드실텐데요’ 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세상을 얻었다고 배 두드렸었다.
아무튼 요즘 친구들의 화제는 학교로 군대로 민들레 홀씨 되어 떠나간 자식들에 대한 짝사랑 이야기로 눈물겹다. 하루에 한번 전화 안하면 용돈을 끊겠다고 협박한 친구부터 아이의 생활에 방해가 될까봐 전화도 마음대로 못한다는 배려형 친구까지 십인 십색이다. 그렇게 각가지 방법의 짝사랑을 털어 놓으면서도 공통분모가 하나 있다. 그것은 모두 밥에 관한 것이다. 밥 먹었니, 밥은 먹고 다니니, 먹고 싶은 것 없니, 밥 거르지 말고 꼭 먹어라 등등이다. 밥에 대한 화제 빼고는 외지로 떠나 있는 아이들과의 대화는 말없음표 내지는 말줄임표라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먹을 것이라면 가장 평등이 잘 실현되고 있는 미국에서도 그런 대화가 주류인 것은 이민 세대로서의 큰 벽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부시 이야기를 영어로 하자니 수준이 아니고 공부 이야기를 하자니 이미 아이들은 너무 커 버렸다. 그래도 혹 속이 깊은 아이들은 엄마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기도 하는 모양인데 아웃 오브 사이트 아웃 오브 마인드라고 각자 제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면 엄마? 그 사람은 밥과 함께 그저 그렇게 거기에 늘 있어주는 존재인 것을 내가 지나온 과거만으로도 짐작하고 남는다.
비록 밥소리말고는 할 말을 잃어가는 부모라도 아이를 생각하면 늘 마음이 애틋하고 아리다. 못해 주었을 때야 말할 것도 없지만 잘해 주고도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내가 엄마라도 설명할 길 없다. 똑똑한 아들을 두어 코가 하늘 만큼 높았던 어떤 분의 며느리감으로 남자만 데려오지 않으면 된다는 절실함이 배어있는 우스갯소리가 먼 얘기로 들리지만은 않는다. 고통의 바다라는 세상에 나오게 해서 무지막지한 경쟁 사회에 아이를 던져 놓은 부모의 한결 같은 짝사랑은 어제도 그랬듯이 내일도 그럴 것이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에 춥다고 덜덜 거리는 아이를 보고 ‘추우면 옷을 입고 더우면 옷을 벗어!’ 그렇게 멋진 말로 오늘 아침 아이를 호통쳐서 학교로 보냈다. 사내 녀석 마마보이 만들지 말라는 남편의 한결 같은 충고를 상기하면서 어찌 그리 맞는 말만 했는지 내가 다 신통하다. 그런데 아이가 집에 돌아와 갈아입을 옷을 전기 담요 밑으로 슬쩍 밀어 넣는 이것은 또 무어람. 짝사랑이 아름답다고 누가 말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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