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것 중의 하나가 남에게 무엇을 주고도 욕먹는 일이다. 왜 주고도 욕먹는가. 에티켓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남에게 무엇을 줄 때는 성의가 담겨 있어야 한다. 준다는 자체가 성의의 표시다. 성의가 없이 남에게 베풀면 상대방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기 쉽다. 이렇게 되면 차라리 주지 않느니만 못해진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여기저기서 크리스마스 카드가 날아오고 선물을 주고받는 계절이다. 주고받는 데도 에티켓이 있다. 우선 크리스마스 카드의 경우부터 살펴보자. 카드를 보낼 때는 이름의 스펠링이 틀리면 실례다. JUN인데 CHON라고 쓰는 것도 결례지만 어떤 사람은 아예 이름을 작문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겉봉투에 “이철희 귀하”라고 쓴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은 적이 있다. 아마 남이 부르는 나의 이름만 듣고 카드를 보낸 것 같다. 그래도 그렇지 상대방의 이름도 제대로 모르면서 카드를 보내다니… 차라리 카드를 안 보냈더라면 아무 일 없었을 것을 카드를 보냈다가 일을 만든 케이스다.
친한 사이인데 카드에 인사 한마디 없는 것도 이상하다. “자기와 나 사이에 한마디쯤은 있을 법한데” 하는 아쉬움이 들면 그건 벌써 잘못된 크리스마스 카드다. 카드를 대량으로 보내는 정치인이나 단체장이면 몰라도 별로 바쁘지도 않은 사람이 인쇄된 문구만 적혀 있는 카드를 보내오면 무성의해 보인다. 특히 동창이나 옛 직장 동료로부터 카드를 받았는데 아무 안부의 인사도 없으면 섭섭하기 짝이 없다.
남에게 선물 줄 때는 값이 문제가 아니라 성의가 문제다. 남에게서 받은 선물을 재포장해서 보낸 인상을 주거나 쓰지 않는 물건을 정리하기 위해 주는 것 같은 선물은 그런 인상을 준다는 것 자체만으로 실패작이다. 상대방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품을 선물로 보내면 마치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기분이 들어 선물 받고도 마음이 찜찜해진다.
크리스마스 선물이 꼭 물건일 필요는 없다. 따뜻한 말, 격려의 인사도 훌륭한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수 있다. 나는 오늘 아침 TV 뉴스에서 부시 전 대통령이 둘째 아들 제프 부시(플로리다 주지사)에 관한 회고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저것이야말로 아버지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로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시 전 대통령(아버지)은 주지사 임기를 마치는 제프 부시 주지사를 위해 한마디 해달라는 주의회의 요청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는 인사말 도중 아들이 94년 주지사 선거에서 패하고도 의연한 자세로 재기했던 과정을 회고하다가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흘리면서 “사람은 어려운 고비 넘기는 것을 보면 됨됨이를 알 수 있는데 제프는 정말 인격을 갖춘 정치인”이라고 칭찬했다. 그러자 아들 제프가 연단에 올라와 아버지를 위로하며 함께 내려가는 모습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아버지가 아들의 인격을 칭찬하면서 눈물 흘리는 것 이상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어디 있겠는가. 상품과는 비교가 안 되는 선물이다.
크리스마스를 너무 돈으로만 계산할 일이 아니다. 따뜻한 마음을 주는 것 - 그것도 훌륭한 선물이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것도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물론 남편이 아내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평생 잊혀 지지 않는 성탄절 선물이 될 것이다.
clee@koreatimes.com
<이 철> 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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