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어느 교회 식당. 전날 내린 비로 쌀쌀해진 날씨에 맞게 설렁탕이 점심 식사로 나왔다. 예배 끝난 후 잔뜩 움츠리고 식당으로 들어섰던 교인들은 따뜻한 국물을 반가워하며 맛있게 식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여기저기서 파가 화제로 떠올랐다.
“이거 먹어도 되는 건가. 요즘 파를 먹으면 안 된다던데…”“그렇다고 파를 안 넣고 먹을 수는 없잖아요. 설렁탕은 생파를 듬뿍 넣어야 제 맛인데” “너무 따지다가는 아무 것도 못 먹어요. 그냥 기분 좋게 먹읍시다”…
그런가 하면 남가주 세리토스의 구이전문 식당인 길목은 요즘 생 파를 쓰지 않고 있다. 고기구이에 으레 따라 나오는 파 무침도 없앴고, 동치미 국수에 송송 썰어 넣던 파 고명도 없앴다. 파무침 대신 상추와 양배추, 당근 등 야채를 채 썰어 비슷한 맛을 내고 있다.
이 식당의 방침은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혹시라도 손님이 파를 먹고 식중독에 걸리는 일이 생길까봐 미리 조심을 하는 것이다. “타코 벨 뉴스를 듣고 바로 파 요리를 없앴어요. 내가 먹기 찜찜한데 어떻게 손님상에 내놓겠느냐”고 식당측은 말한다.
때 아닌‘파 비상’이다. 지난 주 타코 벨에서 음식을 먹고 식중독에 걸린 케이스들이 보고되면서‘파 비상’이 걸렸다. 뉴욕, 뉴저지 등 주로 동부 지역 타코 벨에서 음식을 먹은 고객들 중 최소한 48명이 식중독에 걸린 것으로 보고가 되었다.
식중독의 원인은 E 콜라이 감염. 이 균은 쇠고기, 닭고기 등 육류를 제대로 익히지 않고 먹을 때 주로 감염되는 데, 최근에는 채소를 통해서도 감염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9월말에는 샐러드 용 시금치를 먹고 100명이 넘는 환자들이 발생하여 한동안 시금치 비상이 걸리더니 이번에는 파가 눈총을 받고 있다.
타코나 샐러드 등에 뿌린 생파가 원인인 것 같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타코 벨 본부는 전국 5,800여개 산하 식당에 파 사용 금지 명령을 내린 상태이다. 이번 일로 이미 타코 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케이스들이 있고 보면 당분간 미국식당에서 파 구경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파는 우리 음식에서 없어서는 안될 기본양념이다. 시장에서 파가 완전히 사라진다고 해도 미국인들은 별로 아쉬울 게 없지만 한국 음식에서는 파가 없으면 맛이 제대로 나지를 않는다. 김치, 국, 나물 무침, 고기양념 등 파가 안 들어가는 음식이 거의 없다. 연간 한국에서 1인당 소비량은 12-13kg. 양념용으로는 엄청난 양이다.
한바탕 감염소동이 벌어지면 당장 타격을 받는 것은 관련 농장들. 일반 소비자들은 안 먹으면 그만이지만 농부들은 피해를 비켜가기가 힘들다. 지난번 시금치 파동 때 시금치 재배 농장들이 다 자란 시금치를 트랙터로 갈아엎었듯이 이번에도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피해를 입는 농장들이 상당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한국 수퍼마켓에서는 별 타격 없이 파가 소비되고 있다. 한식에서 파를 안 쓸수는 없고 당분간은 익혀 먹으면 찜찜함이 덜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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