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로 불리는 고타마 싯다르타의 가르침 중 ‘독화살의 비유’라는 것이 있다. 제자가 세존에게 왜 세계가 영원한지 영원하지 않은지, 영혼과 육체가 하나인지 둘인지, 죽은 다음에도 생명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가르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석가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한 남자가 독화살에 맞았다. 시시각각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데 이 남자는 자기를 쏜 사람의 계급과 이름, 그가 키가 큰지 작은지, 피부색이 검은지 노란지를 알려 달라며 그러기 전에는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버틴다. 이 사람 요구대로 일일이 대꾸를 해주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이 사람은 답을 듣기 전에 죽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음에 직면해 있다. 세계의 구조와 사후 세계에 논하는 것보다 고해에서 벗어나 해탈에 이르는 길을 가르치는 것이 급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사담 후세인 처형과 관련, 한마디 했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반 총장은 후세인 처형에 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후세인은 이라크 국민에 대해 말로 다할 수 없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책임을 져야 한다. 사형은 각국이 결정할 문제”라고 지당한 얘기를 했다. 그런데 이를 뉴욕타임스 등 일부 신문이 문제 삼고 나선 것이다. 인도적 이유로 사형에 반대하는 유엔 입장과 위배된다는 것이다. 반면 월 스트릿 저널 등은 눈치 보지 않는 반 총장의 소신 발언을 옹호하고 나섰다.
사형이 인도주의적인 형벌이냐 아니냐를 둘러싼 논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 대부분의 나라는 이를 폐지한 반면 미국과 아시아, 회교, 아프리카 각국은 이를 유지하고 있다. 2004년 현재 가장 많이 사형을 집행한 나라는 중국으로 3,400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전세계 사형 집행의 90%가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인구 비율로 따지면 사형이 가장 많은 나라는 싱가포르다. 단순히 사형제도가 있느냐 없느냐만 가지고 그 나라의 선진국 여부를 결정할 수는 없다.
사형제 찬반 여부는 토론해 볼 가치가 있는 문제지만 지금 유엔이 당면한 시급한 과제는 아니다. 이보다 중요한 과제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그 중 첫 손가락에 꼽아야 할 것이 지금도 죽어가고 있는 북한 강제 수용소 수감자들과 코가 꿰어 끌려가는 중국의 탈북자 문제이다. 중국에서 이들을 돕던 재미 한인 아드리안 홍 북한 자유(LINK) 사무국장 등 3명이 최근 공안에 체포됐다 추방됐다. 이들은 운이 좋은 편이다. 역시 탈북자들을 돕던 뉴욕의 스티브 김씨는 2003년 9월 이후 지금까지 복역 중이다.
석가의 말이 아니더라도 세상에는 급한 일과 급하지 않은 일이 있다. 철학적 논쟁도 중요하지만 당장 죽어 가는 이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 더 서둘러야 할 일이다. 후세인 처형이 옳은가 그른가 하는 논쟁은 만주와 강제 수용소에서 죽어 가는 이들을 살린 후 해도 늦지 않다. 첫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이 해야 할 일 중 그보다 시급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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