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 그믐 날 밤에 치르는 한 의식으로 집 안팎으로 불을 밝혔다.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서 일초마다 새해를 향해 내려오는 타임볼에 맞추어 정확한 시각에 샴페인도 터뜨렸다.
12월 중순부터 켜져 있는 수백개의 장식용 불들이 집 앞의 나무들을 찬란하게 수를 놓은 듯 밝히고 있다. 집으로 올라가는 언덕길로 들어서면 이웃 세 집이 화려한 데코레이션으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온통 동네를 불꽃 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계곡에 있는 동네는 바로 위쪽이 산으로 끝이 나 버리기 때문에 이 아름다운 광경을 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즐거워서 한일인데 누가 봐 주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것도 금년에는 오십견 때문에 팔을 놀리지 못해 직접 하지도 못했다. 연말이 가까워 오면 우선 집 앞에 색색으로 맞추어 조그마한 전구알들을 생각대로 배열해 놓고, 드디어 어둠이 깔리면 스위치를 켠다. 수백의 조그마한 불꽃이 합창을 하는 그 첫 순간의 탄성, 아, 아직도 내게 이런 감동이 남아 있었던가, 싶다. 그리고 이 장식은 새해의 첫 주일까지 계속되고 장식불을 내리는 순간, 내게, 새해는 또 하나의 묵은해로 흘러가고 만다. 얼마나 많은 새로운 새해를 맞을 것인가, 맞을 수 있을 것인가.
4000년 전에 바빌로니아에서 비롯했다는 새해 축하 의식은, 원래는 입춘 후에 첫 초생달이 뜨는 날에 행해졌다고 한다. 만물이 새로운 생명을 트는 이른 봄에 열하루 동안 거창한 축전이 진행 된 것으로 전해진다.
로마 제국 시절에는 늦은 3월에 새해를 축하했다. 그러나 로마의 황제들은 달력을 마음대로 바꿔댔기 때문에 달력이 해와 달의 움직임과 맞추어 가지 않았다. 드디어 세네트에서 달력을 바로 잡기 위해서 정월 초하루를 새해의 첫날로 선포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줄리어스 시저도 자신의 이름을 딴 줄리언 달력에다, 새해는 일월 일일에 시작된다고 못 박았다. 시저는 새해를 정월 초하루에 시작하기 위해서 그 전 해를 445일로 연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고충도 감수했다. 중세기를 거치는 동안 교회는 신년 축하를 반대했기 때문에, 서방세계가 1월1일을 새해의 첫날로 경축해 온 역사는 지난 400년에 불과 하다.
새로운 해를 새롭게 맞는다는 뜻으로 사람들은 새로운 계획과 포부를 다짐하고, 맹세하고, 한 며칠 그대로 실천하기도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시간은 꼭 같은 스피드로 흐르고, 우리들을 위하여 지난해와 오는 해를 구분해 주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시간과 함께 흘러가면서, 몇 번의, 몇 십번의 새해를 다시 맞아 가노라면, 같은 다짐, 같은 맹세를 수 없이 되풀이 하게 되고, 결국에 변한 것은 주위환경과 그 속에 혼자 서있는 나의 모습뿐이다. 신년의 결의가 실행된 적은 거의 없고 구태의연하게 다시 새로이 시작해 보는 것이다.
누구인가의 말이 생각난다. 그믐밤에, 낙천적인 사람은 새해가 들어오는 것을 보기 위해 밤샘을 하고, 비관적인 사람은 낡은 해가 확실히 떠나는 것을 보기 위해서 밤샘을 한다고 한 말. 나는 불을 환하게 켜놓고, 정문을 열어 놓고, 들어오라고 손짓까지 해가면서, 이 새해를 모셔 들였다. 그리고 묵은해야, 잘 가라, 하고 배웅도 해주었다. 나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나 보다. 그렇더라도 이번 새해에야말로 특별히 복을 많이 받았으면 정말 좋겠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 내가 앞으로 알게 될 사람들, 그리고 나 자신, 모두가 많은 복을 받게되면 참으로 좋겠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
송정원
베벌리힐스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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