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봄을 노래하면 봄바람은 나무를 흔들어 겨울잠을 깨운다. 우리 집 뒤뜰의 복숭아나무도 줄기와 가지에 정맥 같은 푸른 기운이 돌더니 여린 가지마다 분홍색 작은 꽃들이 옹기종기 화사한 봄을 피우고 있다. 나는 서늘한 방안에 있다가 봄볕이 뜰 안에 들 때면 양지에 나와 앉아 푸른 하늘 저 너머로 고향의 봄을 본다.
내 어린 시절의 고향의 봄은 남쪽에서 올라왔고 얼어붙었던 흙이 풀릴 때면 어머니는 양지 밭에 가 냉이와 달래를 캐곤 했다. 나는 어머니 곁에서 물기 머금고 파릇한 냉이를 캐다가 꾀가 나면 밭도랑 가의 땅버들 나뭇가지에서 털이 보송보송한 버들개지를 따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버들강아지와 노닌다. 어머니는 버들가지 꺾어 피리를 만들어주시고 나는 빈 하늘에다 버들피리 불며 봄을 노래했다.
봄바람이 마을 뒷산의 허리를 감고 도니 진달래꽃은 산기슭에서 등성이로 붉게 피어오르고 거칠고 초라했던 산은 붉게 치장하고는 화려한 자태를 하늘에 내보인다. 마을에서 할 일 없던 나와 동무들은 무리지어 산에 올라가 싱그러운 찬꽃 한 입 가득 물고 봄맛을 즐긴다. 산은 시끄럽다가 해거름에 기슭에서 그늘져 올라오면 우리는 동생들에게 줄 꽃방망이를 손에 들고 오솔길을 내려온다.
진달래꽃이 지고 나면 비어 있는 산마루에는 적막감이 감돌고 산비탈 은밀한 곳에 연분홍 철쭉꽃이 고즈넉이 피어 있다. 장끼는 풀숲에서 목을 빼 울고 뻐꾸기는 산등성이를 넘나들며 남의 둥지를 훔친다. 겨우내 움츠려 있던 내 몸과 마음도 봄을 먹고 훌쩍 큰다.
그러나 하늘이 여름을 노래하니 봄은 속절없이 여름에다 계절을 넘겨주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가버렸다. 지금 내 고향은 내가 어린 시절 수없이 걸었던 골목길도, 들길도, 오솔길도 흔적이 없다. 뒷산은 키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 진달래나 철쭉 같은 관목수는 생존터를 잃고 있다. 고향 땅도 시류 따라 바뀐 것이다.
이제 나는 고희를 넘기고 겸허한 마음으로 천명을 정관하고 있다. 인생의 정상에서 되돌아보는 어린 시절이 이처럼 아름답게 추억되는 것은 세상을 모르던 천진난만하던 그 시절의 고향이 어머니와 하나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나를 낳아 기르시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내 영혼을 보듬어 주던 곳. 그리움이 물안개처럼 피어오르는 내 고향. 나는 동심으로 거듭나 세상을 순리 따라 욕심 없이 살아온 내 인생의 고향인 어머니를 슬프도록 사모하고 있다.
<남진식/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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