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의 창조설을 볼 것 같으면 신은 여성을 만들때, 꽃의 아름다움과 새의 지저귐, 무지개의 영롱함, 산들바람의 감미로운 입맞춤, 양의 온순함, 여우의 교활함, 파도의 웃음, 구름의 방종, 소나기의 변덕스러움을 조화있게 짜 넣었다고 한다.
그래가지고는 남자에게 아내로 삼도록 주었다고 되어있다. 나는 지금 남자에게 주어진 여성에 대해 남녀평등이니, 여성상위시대니하여 무엇을 얘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전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여우의 교활함과 구름의 방종, 소나기의 변덕스러움을 과연 여성에게만 신은, 짜 넣은 것일까 하고 생각해보게 된다.
어느때부터인가?
여성에게 그 교활함이나 변덕스러움, 방종을 얘기한 것이 아마도 역사에 나오는 양귀비나 달기, 장희빈이나 장녹수로부터 시작되어 인식돼 온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들은 오로지 자기의 사랑을 위해, 하늘같이 사모하는 상감의 마음을 사로잡아 보려 목숨걸고 몸부림치던 진실이 있었다. 물론, 비극으로 최후를 맞은, 어리석고 교활한 계책이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어떤 슬프고 가슴 아픈 애증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남자들!
더구나 한국 정치판의 남자들을 보면, 사천년전 그 창조설의 작가를 만나, 여성과 남성에 대한 창조설을 다시 써야겠다고 충고하고 싶다.
자기의 명예와 출세를 위해서는 동료나, 선후배를 깔아 뭉게는 건 얘기거리도 안된다. 자신의 정치적 목적이나 이득을 위해, 수십년 몸담아 모셔왔던 자기 상관을 헌신짝 버리듯 차버리고 나와, 헐뜯고 모함하고 치부까지 속속드리 파헤지는 남성네들!
자기의 주관이나 정치적 소견, 사상은 하룻저녁에 술자리에서 바꿔치기되고, 어제까지 물고 뜯고 부정하던 반대파에게 꼬리를 숙이고 들어가는 남성네들을, 우리는 어떤 가슴으로 어떤 표정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어디 한국 정치판 뿐이랴
이곳 동포 사회에서도 여성들 보다는 남성들의 봉상사나운 일이 꽤 많이 보인다. 단체가 하나 생기면 같은 단체를 또 만들어 자기가 단체장이 되어야 한다.
그 단체의 특정 영리를 추구하든, 또는 친목이 목적이든 그 목적은 뒷전이고 장이 되어 대외적으로 자기 과시를 하고 싶어한다.
한인들을 상대로 봉사하겠다고 나섰으면, 마음을 비우고 봉사할일을 찾아야 한다. 웬만큼은 시간도, 돈도, 육체적인 노력도 자비부담으로 들것이다. 개인으로 부조해야 할것도 단체돈을 쓰면서 마이크는 잡고 싶은게 남자들 속성이다.
단체장들 중 대다수의 여성들은 자비로 움직이며 조용히 일하는걸 볼수 있다. 나서서 이름 내려 하지 않는다. 정말 봉사의 참뜻을 아는 것이다. 남성에게 주어진 여성이 아니라 여성이 만들어낸 남성들! 우리 여성들이 잘못 만든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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