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텍 총격사건을 보고 미국 대학과 중·고등학교에서 내내 고립되어 살아가는 학생들의 처지를 더욱 생각하게 된다. 나도 처음 미국에 와서 어느 큰 주립대학 기숙사에 들어가 3주일을 살며 영어를 배운 적이 있다. 그때 내가 안 것은 미국 대학에서는 아무도 학생을 맡아서 지도해 주거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이 모두 혼자서 알아서 해야 하고, 공부며 친구 사귀는 일서부터 취미생활까지 자기가 어떻게 하지 않으면 완전히 고립돼 스트레스가 쌓인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중·고등학교에는 반과 담임선생님이 있고, 대학에는 과 사무실과 조교가 있는 우리나라 제도가 훨씬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대학까지 다닌 것이 너무나 고마웠다.
미국 학교에서는 우선 마땅히 갈 데가 없고, 어디에 있어야 할지를 모른다. 기숙사도 방을 같이 쓰면 프라이버시가 없어서 하루 종일 룸메이트와 같이 있기가 곤란하고, 유럽이나 한국처럼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살지도 않고 대개 책만 빌려 가지고 나간다. 식당에서는 매일 똑같은 메뉴로 천편일률적인 식사를 해야 하고, 대체적으로 쳇바퀴 같은 생활이 계속된다.
생활의 단조로움과 권태를 메우려면 친구가 많아야 하는데, 언어소통이 편하지 못한 외국 학생으로서는 이것도 힘들다. 친구란 서로 끌려서 친해져야 하건만, 내가 일부러 매달리거나 달라붙지 않으면 친구를 사귀기가 힘들다. 수줍고 자존심이 세거나 하루 종일 누구와 붙어 있기를 싫어하는 성격의 소유자는 더 고립되기 십상이다. 또 서클에 들거나 운동, 예능 교육을 받고 사교생활을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는 현실이 있다. 부모가 용돈을 많이 주지 못하는 학생의 활동 폭은 더 좁아진다.
무엇보다 대화의 상대가 없는 것이 제일 괴롭다. 유럽이나 한국에서는 일부러 상담 카운슬러에게 가지 않아도, 담임선생이나 학과 지도교수, 학과장 등에게 언제나 모든 문제를 얘기하면 그런대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미국에서는 어른이 되어도, 대화 상대가 없어서, 비싼 돈을 내고 심리상담가에게 가서 혼자 떠들고 오는데, 그래도 심리학자가 문제의 해결책을 주지는 않는다. 그냥 말 상대를 해 주고 돈을 받는 것이다.
이런 정신적·경제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마약을 하거나 폭력적 게임과 무기에 관심을 가지면 범죄자가 될 수도 있으니 무서운 일이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우선 선생이나 교수들이 싫어해도 담임선생이나 지도교수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해결이 안 되는 일들은 학생보다 나이가 많고 학문적·사회적 경험이 있는 교수나 교사가 책임지고 맡아서 상담하고 돌보아 주어야 한다. 미국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일이 사람을 돌보고 책임지는 일인 것 같다. 그래도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은 학생을 돌 볼 책임과 의무가 있다.
또 부모가 아무리 사느라고 바빠도 자식들과 더 많은 대화를 해야 할 것이다. 교회나 다른 공동체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면, 아이들에게 좋은 활동거리와 대인관계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리고 학생들은 우선 자기가 좋아하는 공부에 마음을 붙여 정서적인 지주를 만들고 돈 안 들이고 정서와 감정표현을 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활동을 찾아야 할 것이다. 노래 부르기 같은 것도 좋을 것 같다. 어려서부터 고독에 단련이 되어야 하는 미국생활의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연행 불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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