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당은 민주당이다.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미 건국 초기 연방당과 맞서던 민주 공화당까지 가니까 역사가 200년도 넘는 셈이다. 그 숙적 공화당은 남북 전쟁 직전에 생겼으니까 140년이 좀 넘는다.
이처럼 긴 정당의 역사를 갖고 있는 미국이지만 당내 경선이 보편화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건국 후 100년 이상 당의 보스가 지역구 후보를 결정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던 것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엽 소위 ‘진보주의’ 운동이 지지를 얻으면서 당원과 유권자들이 후보를 뽑는 당내 경선이 일반화되기에 이르렀다.
경선 방식은 주마다 다르지만 크게 나누면 당원만이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닫힌 경선’(closed primary)과 일반 유권자도 당적에 관계없이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경선’(open primary)으로 나뉜다.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마다 언론의 주목을 받는 아이오와 ‘당원 대회’(caucus)와 같이 당원들이 단순히 표만 던지는 것이 아니라 한데 모여 토론도 하고 타협도 하는 방식으로 대의원을 뽑는 것도 있다.
어떤 방식으로 하건 당원과 일반 유권자 투표로 후보를 결정하며 투표가 실시되기 오래 전 어떤 방식으로 뽑을 것인지가 결정돼 있다는 점이 미국 선거의 특징이다. 미국 선거의 특징이라기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상식이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주요 후보들이 이 방식대로 뽑자, 저 방식대로 뽑자 해 가지고는 타협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어느 후보도 자기가 유리한 방식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권자가 후보를 뽑는 것이 아니라 후보가 자기한테 유리하게 유권자를 정하려는 이상한 나라가 있다. 바로 올해 대선을 앞둔 한국이다. 한나라당의 두 유력 후보가 서로 자기 방식을 고집하며 당을 깨기 일보직전이다.
이를 막겠다고 강재섭 대표가 내놓은 안은 더욱 가관이다. 선거인단 규모를 전체 유권자의 0.5%로 해서 23만1,000명 수준으로 늘리고 여론 조사 반영 비율의 최저선을 보장한다는 것이 중재안의 내용이다. 23만1,000명이란 숫자는 지난 2006년 지방선거 기준 유권자 총수의 0.5%인 18만5,321명에 여론조사 대상인원 20%를 더한 숫자라고 한다.
또 여론조사 반영비율은 ‘당원 및 대의원, 국민 참여 선거인단의 유효투표수의 20%’를 반영하는 산정 원칙은 유지하되 일정 수준 이상의 민심 반영을 보장하기 위해 여론조사 반영비율 산출시 국민투표율 3분의 2를 최저선으로 하기로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23만1,000명이란 숫자는 무엇을 근거로 해서 나왔으며 여론 조사 반영 비율은 어떻게 정해졌는지 알 수 없다. 이 안 발표 당일 날 당직자들도 뭐가 뭔지 몰라 허둥댔다 한다. 이런 복잡하기만 한 엉터리 중재안으로 제대로 투표가 이뤄질 지도 의문이지만 이뤄진다 해도 순순히 승복할 후보는 없을 것 같다.
대권을 잡아 앞으로 5년간 대한민국의 안위를 책임지겠다는 후보들의 태도나 아직까지 뽑는 방식 하나를 정하지 못해 쩔쩔매는 한나라당의 모습이나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번 타협안은 중재안이 아니라 ‘중재앙’이란 말이 맞는 것 같다. 경선 규정하나 정하지 못하는 한나라당과 후보들은 대권을 맡을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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