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침과 전, 찜, 회, 탕 등 어떤 요리로 먹어도 맛이 일품인 홍어.
전라도 속담에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란 말이 있다.
그토록 귀하고 맛있는 홍어가 왜 ‘만만한 것’으로 비유됐을까??
홍어의 수컷 생식기는 한 쌍으로 꼬리 양쪽에 길게 늘어져 있는데, 이게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 그래서 어부가 숫놈을 잡으면 우선 홍어거시기부터 잘라 버려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가 되었다고 한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보면 ‘수놈에는 양경이 있다. 그 양경이 곧 척추이다. 모양은 흰 칼과 같은데, 그 밑에 알주머니가 있다. 두 날개에는 가는 가시가 있어서 암수가 교미할 때에는 그 가시를 넣고 교합한다.
낚시에 걸린 암컷을 수컷이 덮쳐 교합하다가 함께 잡히기도 한다. 결국, 암컷은 먹이 때문에 죽고, 수컷은 간음 때문에 죽어 음(淫)을 탐내는 자의 본보기가 될 만하다’라고 적었다. 실제로 암수가 붙은 채로 끌려 올라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 놈들은 갑판 위에서도 떨어질 줄을 모른다고 한다.
어부들은 ‘그 꼴이 거시기 해’ 수놈의 양물을 싹둑 잘라 버리니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 아니겠는가. 낚시에 걸린 암컷을 덮치는 수놈, 그 처절한 섹스의 미학을 홍어가 연출하니, 과연 놀라운 섭리라 하겠다.
이른 봄철 진달래 꽃이 물들기 시작할 때 홍어의 북상이 시작된다.
한류성 어족인 홍어가 남쪽 바다에서 자취를 감추면 봄이 완연하다는 증거이다. [자산어보]에도 ‘동지 후에 비로소 잡히나 입춘 전후라야 살이 두껍고 제맛이 난다.
2∼4월이면 몸이 쇠약해져 맛이 떨어진다.’라고 기록 되었다. 요즘 사람들도 ‘흑산도 홍어’를 최고로 친다. 옛부터 홍어 주산지가 흑산도이지만, 홍어 식도락문화의 꽃이 피는 곳은 영산포이다. 홍어를 잡으면 배에 실어 구비구비 영산강 뱃길을 따라 일주일동안 올라와 옛 부터 남도의 물
류거점이었던 영산포에 도착하면 어느새 홍어는 푹 발효되어 ‘썩은 홍어’가 되고 만다. 냉장시설이 없던 시절, 먼 뱃길을 따라 올라오는 사이에 자연 발효되어 독특하고 절묘한 맛이나게 되는 것이다.
정작 흑산도 사람들은 ‘콧끝을 자극 할 정도로 싸하게 썩힌’ 홍어보다 생물을 좋아한다고 한다.홍어는 백령도 근해에서도 많이 잡힌다고 한다.
그러나 경기 일원에는 판로가 없어 제값을 받으려면 백령도에서 잡은 홍어 역시 영산포까지 가져와야 했다. 뱃길로 보름여, 혹은 차에 실어 먼 길을 내려오다 보면 그 새 홍어는 삭아 제 살에 다른 맛을 들이곤 했으니,‘실크로드’나 ‘차마고도’에 견줄 서해안의 ‘홍어길’이 아니겠는가.
홍어요리의 본 고장은 영산포가 되겠다.
사실 홍어는 상해도 먹는 음식이여서 먹어도 탈이 없고 삭힐수록 맛난 음식이다. 홍어를 먹기 좋게 토막토막 잘라서 장독 항아리에 밀봉해 두었다가 일주일 정도 지나 삭은 것을 먹게 된다. 예전에는 홍어를 삼베주머니에 싸서 두엄이나 지푸라기 속에 넣어 삭히기도 했다. 홍어는 밀봉되어 삭는 과정에서, 홍어는 몸 안의 삼투압을 조절하기 위해 요소를 몸 안에
지니고 있는데 이것이 분해되어 소화효소인 펩타이드와 아미노산이 만들어 진다.홍어를 삭히게 되면 톡 쏘는 냄새가 나는데 이것은 고기가 부패되어 나는 냄새가 아니라 세균이 부패해서 나는 냄새로서 육질의 변화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에 안심하고 섭취해도 좋다. 홍어가 가지고 있는 암모니아는 부패세균의 발육을 억제 하므로 식중독발생의 염려가 없는 것이다. 잘 삭힌 홍어는 묵은 김치처럼 오래 보관할수록 살이 단단해지고 싸한 맛이 더욱 깊어진다.
발효된 홍어를 뜨겁게 찜을 만들면 아직 분해가 되지 않은 요소와 암모니아가 함께 우리 코를 콱 자극하게 된다. 사실 이 때 우리의 코를 자극하는 암모니아의 양은 소량에 불과하기 때문에 암모니아의 독성은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된다. 하지만 진한 암모니아수는 우리 피부를 상하게 한다. 별로 뜨겁지 않은데도 홍어 찜을 먹다가 입천장을 데는 사고가 생기는 것도 이 암모니아 때문에 입안의 피부가 상처를 주는 것이다.
홍어는 어느 부위 하나 버릴 게 없다.‘애’라고 부르는 내장은 날것으로도 먹지만 요즘 철에 보리 새싹을 뜯어 넣고 끓여낸 홍어탕은 전라도 사람들만 느끼는 맛의 절정이라 하겠다. 보리 싹이 어우러진 홍어탕이야 말로 쑥국, 냉잇국과는 또 다른 격조의 식도락이라 하겠다. 연한 뼈가 오독오독 씹히는 튀김에 무침과 전, 찜, 회, 탕, 심지어 새로 개발된 탕수육까지 홍어요리의 지평은 넓어진다. 그러나 홍어 요리하면 역시 ‘홍탁삼합’이다. 홍어에 막걸리와 묵은 김치, 기름 뺀 돼지고기 수육을 곁들이는 삼합의 도도한 취흥은 어떤 음식도 따를 수 없는 홍어문화의 절정이라 하겠다. 역시 푹 삭아 궁둥내가 나는 묵은 김치와 익힌 돼지고기를 곁들여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켜야 홍어요리의 제맛을 안다고 한다.
홍어나 김치나 막걸리 모두 삭힌 음식으로 세가지가 합쳐 맛의 절정을 이룬다. 푹푹 찌는 두엄더미 속에 사나흘 동안 묻어 푸욱∼ 썩힌 홍어의 아린 맛과 특유의 향내는 홍어식 도락가 들이 최고로 치는 맛이다. 외국인들이야 이 냄새와 맛에 질겁을 하겠지만 그 ‘치명적’인 향내야말로 홍어를 가장 홍어답게 하는 것이니, 어느 누가 이에 시비를 걸겠는가. 썩은 두엄더미 속에서 썩혔어도 세상에 홍어를 먹고 탈났다는 이가 없으니 이 절묘한 과학성과 문화성은 한국인만이 같는 독특함이 있다.
홍어의 발효과학은 아직 미궁이다. 분명한 것은 다른 물고기보다 10배나 많은 요소가 발효 과정에서 암모니아로 변하면서 알칼리성으로 숙성된다는 점. 현장의 발효실에 들어서면 마치 온 몸을 소독하는 기분으로, “만병통치실에 들어온 느낌. 홍어가 내뿜는 기운이 워낙 강해 이곳 일꾼들은 피부병을 모르거니와 홍어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신 뒤 속쓰림이 없는 것도 홍어의 강력한 알칼리성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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