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재외국민 참정권 회복 결정을 내린 이후 논란이 분분하다. 그 핵심은 참정권의 회복 시기와 범위의 문제다.
국내외 참정권 관련 단체들은 올 연말 대선에서부터 당장 실시하라고 연일 확성기를 털어놓고 있다. 또 영주권자에까지 투표권을 줘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미주한인회총연합회(회장 김승리)를 비롯한 일부 전현직 한인회장들도 이에 가세하고 있다.
참정권 시행의 키를 쥔 한국 정치권의 의견은 갈린다. 올해 대선부터 실시하자는 시기문제에는 각 정파가 대체적으로 뜻을 같이 하지만 투표권 허용 범위를 놓고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한나라당은 영주권자에까지 투표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몇몇 참정권 단체들과 궤를 같이 한다. 범여권은 단계적 확대론을 편다. 이번 대선에서 유학생과 주재원등 단기체류자에만 투표권을 허용하고 점차 적용 대상을 확대하자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여야 합의와 상관없이 올 대선에서는 재외국민 선거가 실시되기가 사실상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선거에 필요한 절차와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내부 권력투쟁인 여야의 사정으로 참정권 공방전은 잠시 뒷전으로 밀려난 상태지만 이를 지켜보는 미주동포사회는 예상외로 잠잠하다. 정작 투표 당사자가 될 동포들은 관심 밖이다. 왜 그럴까? 36년 만에 되찾은 주권이 달갑지 않기보다도 그 투표권 행사가 저들만의 잔치가 될 것을 뻔히 알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재외국민 참정권 시행 논란에서 ‘재외국민’은 아예 안중에 없었다. 시기와 범위를 놓고 떠드는 정파들의 셈법은 삼척동자라도 안다. 범여권은 주재원, 유학생 등 단기 체류자들이 자신들에 더 우호적일 것이라 믿는다. 한나라당은 재미동포들 중에는 보수적인 성향의 유권자가 많기에 영주권자에까지 확대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 판단한다.
이러한 정략적인 접근에 그 투표권의 주체인 100만이 넘는 재외국민이 있을 자리는 없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정치권이 재외국민 참정권 시행을 떠들면서도 한번이라도 실태조사단을 보내 기초 조사를 하는 걸 보지 못했다. 국회 차원에서 아니면 정당 차원에서 재외국민들의 생각을 한번이라도 들어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물론 얼마전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이 워싱턴등 몇몇 도시에서 참정권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그나마 동포들의 의견을 진지하게 청취하기 보다는 각 정파의 원론적인 입장만 홍보하는 자리였다. 그냥 주면 고맙게 받으라는 뜻으로 밖에 해석이 안된다.
선관위도 마찬가지다. 헌재 결정 이후 한번이라도 ‘신 유권자나 선거구’에 대한 기초 실태조사를 한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직무유기도 도를 넘었다는 생각이다.
참정권 확대와 조기 실시에 열을 올리는 국내외 단체들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이들은 걸핏하면 700만 해외동포 운운하며 자신들이 전체 재외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것처럼 떠들고 있지만 그 대표성을 위임받았는지 의문이다. 또 그동안 재외국민들의 견해를 수렴하는 절차라도 제대로 가져보았는지 모르겠다. 몇몇 사람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마치 미주나 전체 해외 한인들의 뜻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이들에게 참정권 사안이 미칠 수 있는 동포사회의 갈등 조장이나 현지 국가와의 문제 같은 부정적인 영향 등은 아예 관심조차 없어 보인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오직 자신들의 이해관계만 있을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적어도 참정권 문제에서 정치권은 오만하고, 선관위는 무사안일하며 일부 단체들은 월권하고 있다. 이는 침묵하고 있는, 새로운 유권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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