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많이 변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어렵던 시절의 기억만 안고 갔는데 너무 달라져 깜짝 놀랐습니다.”
서울에서 그는, 수십 년 만에 귀환한 납북 어부처럼 어색해했다. 산천도 인물도 낯설었다. 자주 찾던 관악산 밑 동네는 없어지고 서울대공원이 들어섰으며 사람들은 모두 테크놀로지의 전사들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그 변화된 현재에 서있는 그 자신이 더 부자연스럽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장장 30년만의 모국 나들이였다.
버지니아주 센터빌에 사는 김순옥씨(45)에게 지난 8월은 설레는 여름이었다. 1977년 강남여중 1년을 마치고 가족이민을 떠나온 후 처음 한국을 찾았다. 중고생인 두 자녀가 평통 아카데미에 참가하면서 자원봉사자 자격으로 동행한 것이었다.
“바쁘게 살다보니까 특별히 갈 필요성도 못 느꼈고 어영부영 세월만 흘렀습니다. 이번에도 아이들이 아니었으면 가지 않았을 겁니다.”
8월2일 덜레스 공항을 출발해 아카데미가 끝나고도 일주일을 더 머무르며 자녀들과 개인 시간을 보냈다. 무엇보다 달라진 건 사람들이었다. 대구의 이모 집과 거제도의 언니 집을 찾았을 때 서로는 세월의 짓궂은 장난에 당황하는 자신들을 발견했다.
“장성한 조카들은 물론 사촌들도 몰라봤어요. 이모나 언니도 저를 간신히 알아볼 지경이었으니까요. 그래도 피붙이들을 보니까 비로소 모국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에게 가장 낯설고 신기했던 공간은 노래방과 찜질방이었다. 워싱턴에도 노래방이 있단 말만 들었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터였다.
“노래방 같은 대중적으로 가볍게 즐기는 공간이 있다는 게 참 좋았어요. 스크린에 가사가 뜨니까 저 같은 음치도 노래를 할 수 있더라고요. 퍼블릭 배쓰(Bath)라곤 어릴 적 엄마 따라 동네 목욕탕에 갔던 기억만 희미한데 찜질방이라는 데를 가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목욕도 하고 휴식도 취하고 잠도 자고 별거를 다하더라고요. 제 아이들은 아직도 찜질방 갔다 온 이야기를 합니다.”
70년대 서울을 떠난 김씨에게 문화충격으로 다가왔던 점은 모국이 첨단 정보화 사회가 됐다는 것이었다. 그는 “가정집마다 랩탑을 두고 편안하게 사용하는데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테크놀러지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것을 보고 놀라웠다”며 “KBS와 국가정보원을 방문, 설명을 들어보니 테크놀러지 발달수준이 미국 저리 갈 정도였다”고 되돌아봤다.
마냥 좋은 모국 나들이였지만 아쉽고 안타까운 점도 있었다. 신라 천년의 향기가 배인 경주에서 그는 의외로 한국 청소년들이 한국 역사에 무지하다는 사실을 알고 몸을 떨었다 한다. “학생들이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점에 놀랐어요. 그저 영어나 과외공부만 신경 쓰는 걸 보고 이래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역사를 모르는 청소년들이 앞으로 어떻게 조국을 이끌고 가겠느냐는 것이 김씨의 생각이다. 학생들이나 젊은이들에 섭섭한 건 또 있다. 그는 버스나 지하철 같은 곳에서 어른들한테 자리를 양보하던 미덕이나 어른에 대한 예의가 사라진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18일 귀국길에 오른 김순옥씨는 “이번 방한은 잊고 있던 민족애의 본능을 되살려주고 귀향의 즐거움을 만끽한 여행이었다”며 “대한민국은 공공시설이나 사는 수준은 미국과 다름없이 발전했지만 남을 배려하고 공중의 이익을 생각하는 사회적 소프트웨어도 함께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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