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의 ‘화이트 마운틴’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오래 사는 나무들이 있다. ‘브릿슬콘 파인’이 바로 그 나무인데 대부분 2,000년 이상된 나이테를 가지고 있고 국보로 지정된 세계 최장수의 나무는 4,600년이 넘는다.
고소증을 일으킬 정도의 산 정상(해발 3,500미터)에서 이 나무들이 어떻게 눈과 바람을 견디며 수천년을 살아왔을까. 식물학자들 연구에 따르면 ‘브릿슬콘 파인’의 장수비결은 뿌리에 있다고 한다. 이 나무는 키가 작고 잎이 별로 없는 대신 뿌리가 어마어마하게 굵고 땅속 깊이 파고 들어가 있다. 식물은 뿌리가 깊어야 생명력이 오래 유지된다는 것을 ‘브릿슬콘 파인’이 보여주고 있다.
어디 식물뿐이랴. 정치인의 생명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통합신당 후보 여론조사에서 한달 전만 해도 선두를 달리던 손학규씨가 왜 참패했는가. 뿌리 없이 인기에만 의지했기 때문이다. 연예인들에게는 인기가 생명이지만 정치인에게는 뿌리가 생명이다. 정치에서 인기와 생명력은 골프에서 드라이브 샷과 파딩 게임이나 비슷하다. 드라이브를 잘 치면 보기는 좋지만 게임의 승부는 파딩이 좌우한다.
지난해 5월 국회 출입 기자를 대상으로 차기 대통령으로 누가 적합한가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 그때 손학규씨가 1위로 나타났다. 국회의원 보좌관, 대학생, 교수, 문인 등 지식인층 여론조사에서도 손학규씨가 일등이었다. 옥스포드 박사학위에 교수, 국회의원, 장관, 도지사를 지낸 그는 능력 면에서 이명박, 박근혜, 정동영, 이해찬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라는 게 캠프측이 내세운 주장이었다. 그런 손학규씨가 통합신당 경선에서 참패해 불쏘시개가 되었으니 기막힐 노릇이다. 그것도 한나라당에서 3등을 하고 불쏘시개가 되는 것은 그럴 듯한데 통합신당에서는 불쏘시개 역할마저 지금 어색해 보인다.
손학규씨의 아킬레스건은 한나라 탈당이었다. “한나라당에서 3등한 사람을 어떻게 통합신당의 후보로 뽑을 수 있는가”라는 말로 경쟁자들은 그의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손학규씨의 한나라당 이혼은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리나’를 연상케 한다. 이지적이고 교양 있는 귀족부인 안나는 자신에게 열렬히 프러포즈하는 청년 브론스키의 사랑을 진실로 받아들여 남편을 떠난다. 그녀는 사회의 눈총을 무릅쓰고 새 인생을 시작한다. 그러나 브론스키가 안나의 매력에 싫증을 느끼게 되자 결국 안나의 삶은 자살이라는 비극으로 끝난다.
정치인의 생명력은 뿌리에서 나온다. 김영삼, 김대중, 박근혜씨가 정치인으로 생명력을 가지는 것도 뿌리가 있기 때문이다. 정동영씨가 왜 승리했는가. 호남에 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호남표 결집 파괴력은 무서웠다. 손학규씨는 지나치게 인기에 의존하다 낭패를 보았다. 인기는 하나의 신기루일 뿐이며 생명력이 아니다. 황우석씨가 이를 보여주지 않았는가.
손학규씨는 평소 “내가 무엇이 되는가를 보지 말고 무엇을 하는가를 봐 달라”고 말해 왔다. 그가 출연한 연극의 3막5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막이 지났을 뿐이다. 남은 1막에서 그가 무엇인가 보여주지 않으면 그의 정치생명이 큰 상처를 입을 것이다.
“놈현스럽다”라는 말이 요즘 유행이다. 기대했는데 실망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번 선거과정에서 손학규씨의 처세는 너무나 놈현스럽다.
이 철 / 고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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