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합중국이 처음 생겼을 때 내각은 단촐함 그 자체였다. 조지 워싱턴 대통령을 수반으로 존 애덤스 부통령, 토머스 제퍼슨 국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 재무장관, 헨리 낙스 국방장관, 에드먼드 랜돌프 법무장관, 그리고 새뮤얼 오스굿 우정장관이 전부였다. 부통령은 실권이 없는 자리고 우정장관은 뒤에 장관급 아래로 격하된 것을 감안하면 대통령과 국무, 재무, 국방, 법무장관이 국사를 사실상 결정했다.
이처럼 장관 수가 적었던 것은 연방 정부가 갓 태어나 규모가 작았던 탓도 있지만 미국의 창업자들이 작은 정부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정부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일 조금 통치하는 정부가 최선의 정부”라는 제퍼슨의 말이 이들의 사상을 대변해 준다.
정부에 대한 불신은 계몽주의 시대 이론가들의 공통점이다. 미국 혁명이전의 모든 국가는 사실 왕과 귀족을 위해 중산층과 서민을 수탈하는 강도 집단과 큰 차이가 없었다. 온갖 명목의 세금으로 힘없는 이들의 재산을 빼앗아 가도 항변할 길이 없었다.
1215년 영국의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켜 존 왕으로부터 ‘대표 없는 납세 없다’는 약속을 받아냈고 처음 귀족의 권리이던 이 원칙이 나중에 부르주아에까지 확대되면서 영국은 유럽에서 제일 먼저 시민이 고개를 들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된다.
영국의 일방적인 세금 부과에 반발해 혁명을 일으킨 미국인들은 새로 만들어지는 정부가 영국의 재판이 되지 않도록 여러 장치를 만들었다. 선거인단이 선출하는 대통령이나 초창기 주 정부가 뽑는 상원이 아니라(뒤에 헌법 개정을 통해 직선제로 바뀜) 유권자가 직접 선출하는 하원에 조세에 관한 법률 발의권을 준 것이 한 예다. 정부의 규모를 최대한 작게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정부가 커지면 씀씀이도 커지고 세금도 많이 걷어야 하며 불필요한 규제도 그만큼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한 미국도 시간이 지나면서 내각이 점차 비대해지기 시작, 이제는 최근 생겨난 국토 안보부를 포함 장관 수가 15명으로 늘었다. ‘작은 정부’의 기치를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된 레이건이나 ‘공화당 혁명’이라고 불릴 정도로 기세 당당히 연방 하원을 장악한 보수파 공화당원들이 교육부와 에너지부 등 불필요한 장관 자리를 없애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건만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공무원 자리를 한번 만들기는 쉽지만 없애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 보여준다.
그 이유는 없애자는 쪽의 열의보다 자기 목이 걸린 공무원 집단과 거기 붙어먹고 사는 각종 이익단체의 생존 의지가 비교가 되지 않게 강하기 때문이다. 개혁파들이 20여년 동안 ‘작은 정부’ 구호를 부르짖었지만 연방 정부의 크기는 한 번도 줄어들지 않고 커지기만 했다.
이명박 당선자가 아마도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정부 축소 개편안을 내놨다. 그 동안 종북주의 외교의 본산이 돼 온 통일부를 없애고 기자실 폐쇄에 앞장서온 국정 홍보처도 폐지하며 공무원 수도 7,000명을 줄인다고 한다. 대대적인 개혁이지만 노무현 정부 5년간 공무원 수가 7만 명이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새 발의 피’다.
국가의 법질서를 유지하고 최소한의 행정 업무 처리를 위한 공무원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반면 일반 사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와는 달리 단 한 개의 가치 있는 상품도 생산하지 않는 것이 공무원의 특징이다. 오히려 뭔가 해보려는 기업인의 발목을 잡고 애를 먹이는 습성에 젖어 책임져야 할 일은 안 하려 하고 납작 엎드려 세월만 보내다 나중에 연금이나 타자는 보신주의에 물든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요즘 한국 젊은이들의 제1 희망이 공무원이 되는 것이라 한다. 창의적인 기업인이 아니라 무사안일을 위주로 하는 공무원이 이상적인 직업이 된 사회는 뭔가 분명히 잘못돼 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서 제일 먼저 할 일이 이런 사회 분위기를 바꿔 놓는 것이다. 이번 정부 조직 개편이 옳은 방향으로의 첫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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