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소리에 홀렸다”
이윤수의 연주를 한번 들으면 그의 절대 팬이 되어버린다고들 한다. 지난 16일 지퍼홀에서 열린 이윤수(사진) 피아노 독주회에 다녀온 사람들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나와 함께 연주장에 갔던 일행 4명은 이윤수가 스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를 두드리던 두시간 동안 그의 피아노 소리에 홀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 중 한 사람은 그녀 자신이 피아니스트고, 또 한 사람도 상당한 경지의 클래식 음악 애호가였다.
이 연주회를 앞둔 인터뷰에서 그는 “내 연주를 듣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 좋은 기운을 내어주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이날의 연주는 바로 그가 원하던 그런 연주였다. 사람들은 그의 연주 내내 완전히 집중하고 몰입했고, 그는 자신의 충만한 기운을 지퍼홀 전체를 꽉 채운 객석 모든 곳으로 골고루 전달했다.
그는 곡을 하나 완전히 익힌 다음 자신의 새로운 피아노곡을 쓰는 것 같았다. 그런 쇼팽의 폴로네이즈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 베토벤의 열정 소나타도 들어본 일이 없다. 그는 피아노를 치는 것이 아니라 건반을 애무하고 주물러서 자신이 내고 싶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그의 연주가 정석이었는지, 완벽했는지, 음악적으로 훌륭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의 연주는 사람을 끌어들이고 흥분시키는 흡인력이 엄청난 것이었다.
멘델스존의 론도 카프리치오소와 슈만의 어린이가 있는 정경으로 조용하게 시작된 독주회는 베토벤의 열정 소나타에 이르러 폭발하듯 끝을 맺었다.
관객들은 그야말로 난리도 아니었다. 환호와 기립박수가 잦아들지 않자 이윤수는 오래 빼지 않고 즉석에서 쇼팽의 월츠(A 마이너)를 쳤는데 그걸 치고 나서도 사람들의 환호가 계속되자 곧바로 스크랴빈의 에튀드(D샤프 마이너)를 열정적으로 연주했다. 그때 우리가 느낀 기운은 그것이 의례적으로 준비한 앵콜 연주가 아니라는 것, 이윤수가 진정 자신의 연주를 사랑한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어 연주한 선물이었다는 것이다.
이날 그가 친 곡들은 클래식 음악팬이 아니라도 어디선가 다 들어보았을 유명한 곡들이다. 그런 경우, 관객들로선 쉽고 친숙한 연주회가 될 수 있지만 연주자의 입장에선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곡을 실수없이 연주해야 하는 부담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윤수는 그걸 넘어서 모두 알고 있는 곡들을 새롭게 재해석하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윤수 연주의 또 다른 매력은 그의 모습이다. 나는 그의 세련되지 않은 매너가 좋다. 아직도 앳된 기가 남아있는 잘생긴 얼굴, 쑥스러운 듯 머쓱한 웃음이 좋고, 뒷짐 지고 머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는 자세도 좋다. 의자에 앉은 즉시 1초도 뜸 들이지 않고 건반위로 손이 올라가 연주를 시작하는 자신감과 결단성도 멋지고, 연주하면서는 대체로 큰 몸짓을 보이지 않지만 격정적인 순간에는 의자를 차고 일어날 듯 어쩔 줄 모르는 감흥으로 온 몸이 저릿저릿하게 건반을 두들겨대는 그의 젊은 두 손이 아름다워서 가슴이 다 벅차다.
다시 또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이윤수 콘서트가 오면 절대 놓치지 않길 바란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는 물론이지만 잘 모르는 사람도 즐길 수 있는 연주회, 찐한 감동과 흥분이 팍팍 전해지는 리사이틀이 될 것이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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