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걸작 나들이’해볼까
프란츠 클라인 ‘버트레스’(Buttress)
눈에 보이는 현상·사물을 묘사하지 않고 자유롭게 물감을 사용해 캔버스를 채워나가는 추상표현주의의 선두주자 클라인의 작품.
46.5×55인치의 유화로 즉흥적 붓질 등 본능에 의지한 작업을 통해 화폭 위에 미술을 창조하는 과정 자체를 보여주려 한 작품이다.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관객들은 아름다움도 추함도 느낄 수 없는 그림 앞에서 당혹해한다. ‘대체 무얼 그린 걸까?’ 분석하려 하지 말고 평온하고 차분한 색면화를 응시하다 보면 어느 틈엔가 캔버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 클라인 작품의 공통점이다.
바바라 크루거 ‘스몰 월드’
포스트모더니즘 작가 크루거의 대표작이다. 강직한 페미니즘 아티스트로서 현대사진의 큰 기둥으로 자리해 온 그녀는 143×103인치의 대작인 이 작품을 출발점으로 현대미술과 사진을 종횡무진 휩쓸기 시작했다.
남성위주의 주류 문화에 항거하고 여성들에게 정체성을 자각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그녀의 작품은 대중들이 있는 공공장소의 포스트, 대중들이 보는 광고탑, 그리고 대중들이 착용하는 티셔츠 혹은 메고 다니는 가방에까지 자신의 표현 수단인 붉은 색 볼드 타입의 텍스트와 이미지를 새겨 넣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 작품 역시 언어와 사진이 만났을 때의 파괴력을 자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클래스 올덴버그 ‘페시콜라 간판’
아이스크림 콘, 햄버거처럼 미국인들이 흔히 즐겨 먹는 음식을 거대하게 제작하는 작품들로 유명한 팝아티스트의 작품이다. 올덴버그는 자신의 작품을 제작하면서 사물의 크기를 비정상적으로 확대시켰을 뿐 아니라, 사물의 소재의 속성을 바꾸어 버리기도 했다.
그는 타자기, 변기, 공중전화 같은 일상적 용품들을 부드럽고 유동적인 소재로 제작하곤 했다. 원래 딱딱한 사물이 부드러운 소재로 표현되었을 때엔 사물의 크기가 변형되었을 때 만큼이나 낯설고 당혹스러운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 작품 역시 이러한 해학과 즐거움이 초현실주의적 마술적 효과와 병행되면서 관객에게 다가오고 있다.
엘스워스 켈리 ‘투 패널스’
미국 전후 추상의 대표적인 미술가 켈리의 작품은 대부분 단색의 평면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 작품 역시 예외가 아니다.
2가지의 색깔이 칠해져 있다는 것 말고는 어떤 그림의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직선과 곡선이 다채롭게 만나 제각각 독특한 변형 사각꼴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띌 뿐이다.
색채가 칠해져 있다는 점에서 그림 같기도 하고, 윤곽이 어떤 의도에 따라 특이하게 잘렸다는 점에서 조각 같기도 한 그의 작품(103×109인치·유화)은, 그 모든 가능성을 함축한 애매모호함으로 하나의 장, 하나의 세계가 열리고 있음을 드러내 보인다.
앤디 워홀 ‘전화기’
아크릴과 연필로 제작된 워홀의 1961년 작품이다. 워홀의 작품세계는 대부분 미국의 물질문화와 연관되어 있다. 그는 돈, 달러 기호, 식품, 잡화, 여자 구두, 유명인, 신문 스크랩 등을 그렸다. 그에게 이런 주제들은 미국 문화의 가치를 의미했다. 이 작품 역시 전화기라는 한 물건이 미국 문화에 미치는 영향력을 표현하고 있다. 72×56인치 크기의 작품은 지난 2006년 한 개인이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구입해 미술관에 기부했다.
백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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