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미주 한인의 아버지이자 개화 독립운동가인 서재필 선생의 동상이 세워졌다.
주미대사관과 워싱턴 동상 건립추진위원회는 6일 총영사관 앞에서 서재필 동상 제막식을 갖고 그 뜻을 기렸다. 이 동상은 대사관과 워싱턴 한인사회가 협력해 건립한 것으로 워싱턴에서는 첫 한국인 동상이다.
이날 오후 5시 열린 제막식에는 이태식 대사와 한국 서재필 기념사업회 김중채 이사장, 서재필 박사의 후손인 서동성 변호사, 그리고 김인억 워싱턴한인연합회장, 황원균 북버지니아한인회장 대행, 허인욱 메릴랜드한인회장, 이태미 남부메릴랜드한인회장, 이용진 평통 회장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또 아메리칸대 국제대학원 굿맨 학장, 조지 워싱턴대 시거센터 라슨 소장, DC 정부 관계자 등도 참석, 동상 건립을 축하했다.
이태식 대사는 기념사에서 “서재필 선생은 19세기말과 20세기 초 한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했다”며 “독립협회를 창립했고 한국민을 계몽시키고 세계에 한국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첫 한글 영어 혼용신문인 독립신문을 발행했다”고 그의 업적을 기렸다.
이 대사는 이어 “서 박사는 미 국적을 취득한 첫 한국인으로 2차대전 시에는 종군 의사로 활동, 미 의회에서 훈장도 받았다”면서 “서 박사는 워싱턴 지역에 세워지는 첫 동아시아의 인물로 앞으로 한인들에 세대를 뛰어넘어 큰 격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태면 총영사는 경과보고를 통해 “서재필 동상은 2007년 DC 정부의 건립 허가를 받아 1년여의 준비 끝에 완성했다”며 “워싱턴의 300여개 동상 중 외국인 동상이 절반이나 되지만 한국인 동상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권 총영사에 따르면 건립경비 총 10만 달러는 국제교류재단 6만 달러, 한인사회 성금 4만 달러로 충당됐다. 동상 제작은 전남대 이재길 교수가 맡았으며 전남 보성의 서재필 동상을 그대로 본떴다.
한편 이날 서재필 선생의 동상 건립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워싱턴에서 펼쳐졌다. 워싱턴 D.C. 정부는 제막식에서 이날을 ‘서재필의 날(Philip Jaisohn Day)’로 선포하고 이 대사에 선포문을전달했다.
또 오전 10시 조지 워싱턴대 시거센터에서는 ‘서재필 심포지엄’이 개최돼 위튼대 찬드라 교수, 조지타운대 크리스틴 김 교수 등 학자들이 서재필 선생의 역사적 업적을 재조명했다.
이어 오후 3시부터는 서재필 박사 설명회가 대사관 문화홍보원에서 마련됐다. 제막식 후에는 리셉션이 총영사관 정원에서 이어졌다.
서재필은 1864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18세에 최연소 장원급제했으며 2년 뒤인 1884년 김옥균, 박영효 등과 갑신정변을 주도했다 실패, 일본을 거쳐 도미했다. 1890년 한인 최초로 미 시민권을 획득했으며 1892년에는 조지 워싱턴대에서 한국인 최초로 미 의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1895년 귀국한 그는 독립신문 발간, 독립협회 창간 등 민권 계몽운동을 전개하다 고종의 아관파천 등의 정국 혼란이 이어지자 다시 도미, 1951년 87세로 숨졌다.
유해는 1994년 한국으로 봉환돼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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