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의 클래식 산책
음악을 천직보다 더 사랑하는 두 친구가 있다. 모차르트에 반쯤 마음을 빼앗긴 지성적인 S와 유난히 베토벤을 좋아하는 감성을 가진 Y가 있다.
Y는 베토벤에 관한 CD와 서적, 강의 DVD등을 구입해 독학을 하고, 좋은 사운드 시스템의 구입에 거금도 마다 않는다. 한편 오디오 기기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S는 좋다는 스피커를 Y에게 소개하면서 구입하도록 바람을 넣자 이에 마음이 설렌 Y는 오디오 가게를 들러 흥분 속에 기기들의 소리를 들어본다.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전축으로 업그레이드 하여 두 개의 스피커로 음악을 들었을 때 황홀 하였던 어린 시절의 그 느낌을 아직도 나는 잊을 수 없다. 좋은 것을 이미 한 번 들은 귀는 더 좋은 소리를 요구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제 조그만 방에서 철학자처럼 홀로 음악을 듣기보다는 연주자와 청중들의 반응을 느끼고 함께 박수치고 열광하는 전율 속에서 ‘살아있는’ 소리를 듣는 연주장이 더 좋아졌다.
이런 이야기를 두 친구에게 했더니, 베토벤 매니아 Y는 즉각 ‘운명’ 교향곡의 연주 날짜를 찾아 지휘자를 마주 보는 자리의 티켓을 구입했다. 그러고는 함께 가자면서 미리 공부하라고 ‘운명’ CD 열 가지를 구워주었다. 마침내 우리는 오디오 룸에서 월트 디즈니 연주홀로 교향곡 체험의 현장을 옮기기로 하였다.
드디어 그날이 되었다. 은발이 조명에 유난히 빛나는 크리스토프 폰 도흐나니의 하얀 지휘봉에 우리들의 긴장된 시선이 꽂히자, “타타타타--” 하고 ‘운명’교향곡의 첫 동기가 터져 나왔다. 대개 지휘자들은 노년이 될수록 이 ‘운명’을 더 빠르게 연주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솔티와 카라얀의 경우도 그랬다. 슈만 연주에서는 과장 없이 세심한 절제력을 보여주던 도흐나니도 ‘운명’ 교향곡의 연주에서는 그 열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지, 이 날의 ‘운명’은 무척이나 빠른 템포였다.
첫 악장의 시작에서부터 급하게 몰아친 빠른 템포로 인해 혼(horn)주자가 숨을 들이키기에도 너무 바빠 주요 주제의 시작 순간이 흐트러졌고, 이에 연쇄적으로 전체 앙상블의 일체감이 흔들렸던 것이 이 연주의 옥에 티였다. 그러나 도흐나니는 백전노장답게 운명에 승리하는 영웅을 통쾌하게 그려냈고, 축적된 연륜으로 들려준 그의 연주에 감동된 우리는 손이 닳도록 박수와 환호를 그에게 보냈다.
몸을 진동시키는 악기 소리의 그 닭살 돋는 느낌과 보면서 듣는 연주의 현장에서 다가오는 이 짜릿한 긴장감을, 좁은 방에서 홀로 듣는 사운드와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이런 무대의 열기에 녹아버린 우리들의 대화에서 그날 밤 스피커 타령은 잠시 멀어져 버렸다.
베토벤의 음악으로 현장 연주의 매력에 푹 젖은 우리는 골수 모차르트 팬 S의 제안대로 올 여름은 샌루이스 오비스포에서 있을 모차르트 음악 축제에 한번 푹 빠져 보기로 했다.
■김양희 음악박사: ‘보헤미안’ 및 ‘LA 오페라 어소시에이션’의 뮤직 디렉터.
라디오서울 ‘김양희의 이브닝 클래식’ 진행자. sopyh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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