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월트 디즈니 홀에서 ‘이 팔피티 오케스트라’(I Palpiti Orchestra)의 연주에 다녀왔다. 1991년에 창단되어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후원을 받는 ‘이 팔피티’는 국제 음악 콩쿠르들에서 우승한 세계 20여개국 출신의 젊은 독주자들로 구성된 연주단체로 ‘음악적 평화 봉사단’(Musical Peace Corps)이라고 표현되고 있다.
이 연주회에서 특색 있었던 순서는 올해 열 살인 협연자 바이얼리니스트 엘레나 카와주가 열정적으로 연주한 사라사테의 ‘카르멘 환상곡’이었다. 이 ‘애기’ 음악가의 얼굴 표정에 나타나는 진지함과 자신감 있는 활 놀림 솜씨는 나의 안일한 일상에 상큼한 자극과 도전을 주었다.
특히, 이 연주를 통해 음악의 아름다움은 깊은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확인했다. 이 연주회 프로그램에서는 연주곡목이 다양해 보였지만 막상 연주는 비슷한 성격의 음향으로 인해 청중의 감동을 이끌어 내지못했다. “이게 아닌데”하는 주위 관객들의 표정을 보면서, 좀 더 자연스런 교감으로 진한 감동을 끌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쉬웠다.
로마군에게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슬픔을 표현한 존 태브너가 작곡한 ‘천사의 눈물’은 전문가들이나 흥미를 느낄 곡이었는데, 다소 길게 반복된 미니멀니즘적인 얇은 음향 구조의 정체된 분위기는 일반 청중이 소화하기에는 어려웠다. 그리그의 ‘세레나데’는 보석처럼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었지만, 연주자들의 음악적 역량을 지나치게 통제한 지휘자의 절제감은 마치 ‘포셰 911’을 운전하는 할아버지가 제일 느린 차선에서 조심조심 하는 듯 했다.
이번 연주회는 세계 각국 엘리트 음악인들의 연주를 대중에게 보급하는 이상적인 실천을 하고서도 청중과의 교감이라는 면에서는 음악적으로 빗나간 느낌이었다. 자기 철학만 고집하다 대중으로부터 외면을 받았던 ‘20세기 전위음악’의 전철을 연상시키면서, ‘클래식 음악은 이렇게 어려운 것이구나!’하는 인상만 공연히 심어준 느낌이었다.
이 연주회의 프로그램과 관객의 반응을 관찰하면서, 특히 상대방과의 소통이라는 문제에 대해 새로운 실감을 하게 되었다. 음악회의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대중적이어도 청중의 음악적 성장을 멈추게 하지만, 전문성에 치우친 프로그램은 오히려 연주자들을 대중으로부터 외면시킨다.
성공적인 대화를 위하여 상대의 관심과 역량의 폭을 헤아려야 하듯이, 음악회도 감동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연주회 프로그래밍을 ‘특정 다수’ 청중의 감성에 맞추는 것이 절실하게 보였다. “한두 명의 전문가보다는 ‘다수의’ 청중이 이해할 음악을 작곡하라”고 아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에게 편지를 보냈던 아버지 레오폴드의 걱정이 실감난 음악회였다.
■김양희 음악박사: ‘보헤미안’ 및 ‘LA 오페라 어소시에이션’의 뮤직 디렉터.
라디오서울 ‘김양희의 이브닝 클래식’ 진행자. sopyh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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