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민주 헌법을 지키고 한국의 자유 민주 성장의 토대를 쌓은 역사적 분기점은 역시 서울의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전국 학생들과 이에 영합한 국민의 궐기 운동으로 이승만 독재의 영구집권을 획책한 4회 출마를 저지, 하야시킨 데 있음은 우리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다. 그 당시 4.19 궐기가 없었던들 오늘의 자유 민주 대한이 있을까 의문이다.
이승만 박사 재임 시에 있었던 사실을 조감함으로써 지도자를 택하는 국민의 척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실감하게 된다.
그 당시의 일을 조감하면 이 박사의 반공정책과 거제도 반공포로 청년들을 해방한 것은 찬사를 보낼 만하다.
그러나 이승만 박사는 6.25 당시 부산의 헌법소동으로 3선을 하고, 4선을 하여 영구집권을 하려 헌법 소란이 일어났다.
이 박사의 불공정성은 임시정부 요인과 광복군 요인들을 불기용 내지 정계에서 배제한 것이다. 그는 정치적 정적을 직접 제거하거나 또는 배후조종 세력에서 암살 또는 제거했으니, 조봉암 대통령 후보를 공산당이라 몰아 사형시켰고, 백범 김구 선생, 고하 송진우, 몽양 여운형 등도 배후 압력으로 암살됐던 것은 지금도 석연치 않다.
그는 반민주 독재적 정신으로 민주 헌법을 파괴해서까지 영구집권 하려다 국민의 총궐기에 좌절되어 하야한 것이다.
이승만 박사가 건국 초기의 역사적인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그의 재임 12년간의 총 표상은 반민주 독재 군림의 상징이 됐으니 역사와 도덕을 배우는 청소년과 국민에게 미덕과 표준이 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그의 동상을 건립하려는 움직임은 자제하고 사회 공론에 붙이는 것이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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