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는 세계에서 비영리 자선 활동이 가장 활발한 나라답게 ‘자선연감’(The Chronicle of Philanthropy)이라는 격주간 신문이 있습니다. 이 신문 최신판에 ‘텍사스의 한 작은 마을의 교회들, 지역 봉사를 위해 주일 예배를 쉬다’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내용인즉, 약 3,800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텍사스주 윔벌리(Wimberley)의 거의 모든 교회가 이번 여름 중 한 주일을 택하여 예배를 쉬거나 짧게 드린 후 지역 내 학교들을 방문해 반나절 동안 벽에 페인트 칠하기, 잔디깎기, 시멘트 공사, 칸막이 설치, 교실 청소 등의 자원봉사활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Big Serve’로 명명된 이 행사에는 십 수명의 목사님들을 포함, 약 500여명의 개교회 성도들이 참여했습니다. 그 중 한 명인 마이클 구치(Michael Gooch) 목사님은 “100도가 넘는 땡볕 아래 노인분들부터 청년들까지 거의 모든 연령층이 모였습니다. 모두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기꺼이 찾아 봉사했습니다. 일하기가 불편한 분이나 노인들은 봉사자들의 아이들을 돌보거나, 봉사자들을 위해 점심을 준비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즐겼으며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분명 이 날은 또 다른 ‘Big Serve Day’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기사를 읽는 동안 텍사스의 한여름 날, 웃통을 벗어젖히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학교 지붕에서, 창틀에 걸터앉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농담을 주고받으며 신나게 일하는 모습들이 영화 속의 장면인양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이 그들 무리 중 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아니 되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나도 모르게 흥분이 되었습니다.
사실 이 마을의 학교들은 최근 몇 년간 주 교육예산 삭감으로 심각한 재정문제에 봉착해 있었고, 학생들에게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한 교회의 롭 캠벨(Rob Campbell) 목사님의 아이디어로 이 날이 탄생했습니다. “이 날의 슬로건은 ‘교회의 장벽을 넘어서’(Outside Our Walls)였습니다. 교회는 사람들의 모임이지, 건물이 아닙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는 1,000명 이상이 출석합니다. 지역사회의 고민에 교회가 동참하자는 취지로 이 아이디어를 내놓았을 때, 반대하는 성도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 후로 장로교, 감리교, 성공회, 초교파 독립교단 등 마을의 모든 교회가 참가신청을 했고, D-day를 정하여 진행된 것이었습니다. 이날 500여 봉사자들은 총 2,000여 시간의 귀한 노동을 제공, 학교마다 약 3개월에 걸쳐 해야 할 작업을 4시간만에 끝낼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이들이 성수주일이라는 기독교인의 본분을 망각했다고 꾸짖는 분들도 혹시 계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2세 이후 목사 아들로 자라나면서 성수주일을 기독교인의 가장 큰 본분 중 하나로 믿으며 지금껏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 갈 저의 눈에 이들의 모습이 그토록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월드비전에서 오래 활동하면서 가끔 답답함을 느낍니다. 우리들의 교회가 우리가 스스로 만든 장벽 안에 갇혀 교회 자체 사안에는 민감하지만, 그 벽을 너머의 힘든 세상에는 무관심하다고 느낄 때 특히 그렇습니다.
제게는 그들의 과감한 어느 여름 하루가 좁게는 지역사회, 넓게는 지구촌이 장벽을 넘어 다가가는 우리의 손길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준 가장 귀한 하루였습니다. 그날의 참가자 중의 한명이 남긴 인터뷰 한 자락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을 것 같습니다. “저는 특별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어려운 이들과 함께 했던 예수님을 제대로 따르기를 원했을 뿐입니다.”
박 준 서
(월드비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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