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일원 양로원 한인 500여명
자식있어도 바빠 만나기 힘들어
“추석에 혼자 지내니 외롭냐고? 이렇게 살다 가는 거지 뭘···”
7년째 가족과 떨어져 플러싱의 노인 아파트에서 홀로 지내는 정모(74) 할아버지는 올해 추석에도 한 평 남짓한 텃밭에서 지낼 계획이다. 자식들 분가시키고 6년전 부인과 성격차이로 헤어진 정 할아버지의 요즘 하루 일과는 상록회에서 배정받은 텃밭 일구기가 전부이다시피 됐다.
롱아일랜드에 아들내외가 살고 있지만 일이 바빠 일 년에 한번 얼굴 보기도 힘든 상황. 올해는 한국에 살고 있는 딸의 집에라도 갈까 했지만 그마저도 여유롭지 못한 주머니 사정으로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도 몇 달에 한번 아들네 집에 찾아가 4살, 3살 난 손자들 녀석 재롱 보고 있노라면 세상 근심 걱정이 다 사라진다”는 정 할아버지는 벌써 수년째 홀로 명절을 맞으며 외로움에 내성이 생긴 것 같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우드사이드에서 홀로 거주하는 김모(69) 할아버지 역시 추석에 찾아오는 이가 없기는 마찬가지. 부인과 사별한지 3년째인 김할아버지는 “추석에 별거 없어. 그저 부인 산소 갔다가 낚시가면 그 뿐이지”라고 말했다.
슬하에 둔 2남1녀의 자녀 모두 뉴욕에 살고 있지만 일들이 워낙 바빠 생각처럼 얼굴 보기가 쉽지 않다. 김 할아버지는 “곁에 있을 땐 몰랐는데 요즘들어 명절 때만 되면 먼저 간 안사람이 자꾸 생각 난다”며 물끄러미 하늘로 시선을 향했다.
올해 추석에도 송편을 홀로 먹게 생겼다는 플러싱의 윤모(72) 할아버지도 홀로 지낸지 20년이 넘었다. 지난 76년에 도미해 부인과 살다가 87년 이혼한 후 혼자 살아왔다. 유창한(?) 영어로 “I don’t have a birthday, I don’t have a holiday(나에겐 생일도 명절도 없다)”라며 웃음 짓는 윤 할아버지는 늘 혼자 있어 괜찮을 줄 알았지만 명절날 친구들마저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 버리면 왠지 모르게 쓸쓸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부쩍 썰렁한 기운이 도는 요즘 다가오는 명절에 찾아오는 가족도 없이 홀로 지내는 독거노인들이 늘고 있다. 장성한 자녀들이 바쁜 이민생활에 치여 시간내기가 힘들다는 것은 알지만 올해도 홀로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외로움이 사무친다.
본보가 뉴욕한국요양원, 버겐 한국 요양원, 은혜 양로원, 플러싱 매너 등 한인노인들이 선호하는 뉴욕 및 뉴저지 일원 양로원들을 토대로 독거노인 현황을 조사한 결과, 홀로 지내는 한인 노인 수는 약 500명 이상으로 집계됐다. 그나마 거동이 불편해 양로원 신세를 지고 있는 이들 노인 중 1/3 가량은 특별한 추석 행사도 없이 쓸쓸히 빈방을 지켜야하는 실정이다.
비교적 규모가 있는 몇몇 양로원이나 요양원들은 명절 때면 이곳 저곳 단체들로부터 후원을 받아 파티 등이 열리고 있지만 대부분 소규모 양로원들은 상대적으로 관심이 떨어지면서 별다른 행사조차 마련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안경현 KCS 경로회관장은 “한인사회에 생각 의외로 독거노인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라면서 “추석 같은 특별한 명절 시기만이라도 외롭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사회의 어르신들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심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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