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에 고향을 둔 필자이지만 전남 신안군 압해도의 섬 색시를 평생배필로 맞은 덕분에 반은 호남사람이고, 중공군에게 쫓겨 피난 내려간 경남 거제도 장목리 앞바다의 훈훈한 인심이 내게 제2의 고향을 만들어준 그 때문에 나머지 반은 거기서 영남사람이 됐다. 게다가 이은상 시인의 ‘내 고향 남쪽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마산 와우산 자락에 반세기도 더 넘게 누워계신 어머님 하며, 정든 경상도를 떠날 수 없었던 한분 형님마저 그 땅에 묻혔으니….
필자의 이만한 자격(?)이면 지금 밥그릇싸움으로 점입가경인 영남 향우회 일에 끼어들었다 해서 “당신이 뭔데” 시비할 사람 있겠나 싶다. 그 영남 향우회가 뿌리문제 때문에 진짜 큰 뿌리가 통째로 썩어 문드러지게 생겼다. 당사자인 본인이 영남출신이라야 회장후보 자격 있다, 아니다 부모가 영남출신이면 본인이 어디서 태어났건 상관없다, 엉뚱하게도 출신이란 자구(字句)해석의 차이 때문에 조용하던 집구석이 하루아침 풍비박산 일보직전이다.
필자가 10년 전에 초안해 만든 평안도민 친목회 회칙(총칙 제3항)에서 회원자격조건을 이렇게 규정했다. “평안남북도 출신자와 그 직계(부모, 부부, 자녀)로 한다”라고.
분단 60년에 1세대들 거의가 세상을 떠난 현재 칠십 노인 몇 가정만 남았을 뿐인데 그나마 직계라는 조항이 없으면 평안도민회의 수명은 앞으로 고작 5년 안팎이다. 해서 통일의 그날까지 희망을 잃지 말자는 먼 안목에서 회원자격을 확대하여 간신히 맥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이게 바로 남쪽이 고향인 향우회들과의 다른 점이다. 헌데 지금 영남향우회의 갈팡질팡 하는 모습을 보면 점차 꺼져가고 있는 어느 실향민 단체가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다. 아니고서야 경상도가 뭔지도 모르는 순 서울토박이를 끌어다가 영남인들의 대표로 앉히겠다는 게 무슨 하자가 있느냐는 식의 억지주장이 왜냐 말이다. 씨가 다 말라서 그러자는 건지, 아니면 씨는 많은데 인재가 없어서 서울사람이라도 데려오자는 건지. 마치 한국에 인물이 없으니 미국사람 대려다가 대통령을 시키자 거나, 경북지사감이 없으니 충청도양반 불러오자는 거나 무엇이 다른가. 이런 건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안 되는 상식이고, 전체 영남인들의 자존심문제라는 걸 알아야 한다.
이북도민회 같은 특수성이면 몰라도 출신에 대한 부제 설명이 회칙에 따로 없으면 당사자에게 적용되는 문제로 단순하게 끝날 일을 가지고 회칙 어느 구석에도 없는 부모 출신까지 들먹이며 적법성 운운하려 든다면 조부, 고조부도 적법이고, 이런 식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세인들이 말하는 단군 시조(?)까지도 적법에 포함될 수 있다는 해괴망측한 논리로 비약하고 만다.
어쩌다 대 영남 향우회가 초라한 꼴로 비틀대는가. 화랑의 패기와 향토사랑 정신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정녕 이런 저질 코미디 연출로 20만 교포들을 웃겨볼 작정이라면 그 때문에 향우회의 존립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걸 왜 모르는가. 길은 하나, 힘들고 아플 테지만 김경학 씨의 용퇴만이 이번 사태 해결에 유일한 단초가 될 것이다. 그런 결단으로 흐트러졌던 민심은 수습되고, 영남인들은 다시 하나 되는 모습으로 돌아와서 오늘의 역사를 바로잡아준 영웅적 행동에 경의를 표하게 될 것이다.
양보로 얻어낸 고귀한 명예가 억지로 뺏은 좌불안석에 감히 비교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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