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시절, 김형석 교수님(당시 연세대학교 철학과)의 수필집을 읽으며 깊은 감명과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많은 영감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모든 내용을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대학 교정에서 교수님은 어딘가를 향해 바쁘게 걸음을 재촉하는 학생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질문을 던집니다.
“어이! 학생 지금 어디를 그렇게 바쁘게 가는가?” “네! 교수님! 강의 들으러 가는데 늦었습니다.” “강의를 왜 들으러 가는데?” “열심히 공부해야 졸업한 후에 좋은 직장을 얻지요.” “좋은 직장을 얻는 것이 중요한가?” “그럼요, 그래야 결혼도 하고 아이들 잘 낳아서 잘 살지요.”
“그럼 자네의 그 다음 미래는 어떻게 될 것 같은가?” “평안하게 살다가… 뭐 죽겠지요.” “그럼 결국 자네는 지금 죽음을 향해 바쁘게 가는 것이겠구먼!” “참 교수님도. 그거야 한참 지난 후 얘기잖아요. 저 바빠서 먼저 가겠습니다.”
그 학생의 뒷모습을 보면서 김형석 교수님께서는 “결국 모든 인생이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기차와도 같이 허무한 것이라면, 그 역에 도착하기 전까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라며 글을 마무리하셨습니다.
얼마 전 할리웃의 명배우 폴 뉴먼의 사망 소식을 접했습니다.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스팅’ 등의 영화에 출연하여 그만의 독창적인 이미지를 창출하였고, 특히 명콤비 로버트 레드포드와 함께 출연했던 ‘내일을 향해 쏴라’(원제: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에서, 주제가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를 배경음악으로 여주인공 캐더린 로스를 자전거에 앞에 태우고 시골의 과수원 길을 달리던, 마치 한 폭의 아름다운 파스텔화 같았던 명장면을 우리에게 남겼던 배우. 그의 사망 기사를 읽으면서 특이한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대부분의 기사가 그의 배우로서의 업적보다는 폴 뉴먼이라는 사람 그 자체를 조명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50여년 동안의 결혼생활 속에서 아내에게는 신뢰할 수 있는 남편, 자녀들에게 자상했던 아빠로서의 그, 친구들에게 친절하고 헌신적이었던 그,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모르게 수십년간 행해 왔던 자선사업가로서의 그가 기사의 전면에 찬란하게 서 있었습니다.
특히 1980년도에 세운 유기농 샐러드 식품 생산기업, 뉴먼즈 오운(Newman’s Own)을 통해 얻어진 모든 수익금(약 2억5,000만달러)을 의료연구, 교육사업, 환경운동 등에 기부하고, ‘산골짜기 갱단 캠프’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미주 31개 주, 전 세계 28개 국가의 난치병 이동들을 소리 없이 도와왔다는 기사와 함께 진정한 ‘오블리주 노블리제’의 모델로 그를 칭송하고 있었습니다.
기사를 읽으면서 오래된 기억 속의 김형석 교수님의 글이 생각난 것은 한 인간이 타계한 후에 그를 평가하는 잣대가 그의 성취, 명성, 권력, 금력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에 향기가 있었는가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언젠가는 도달할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어느 선로를 통해 갈 것인가는 우리 각자의 선택일 수 있지만, 그 종착역이 남은 사람들의 환한 미소와 갈채로 장식될 것인지 아닌지는 각자의 선택에 따른 자신의 책임일 것입니다.
기사 한쪽에 걸려 있는, 싱그러우면서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담은 폴 뉴먼의 사진 한 장이 그의 후회 없는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거울을 보며 그의 미소를 슬그머니 따라 해 보았습니다만, 그의 미소는 그의 것일 뿐, 내게는 잘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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