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옆 굴곡이 많은 언덕과 산이 있어 경치가 빼어난 꼿 다주르(Cote d’Azur)의 저택
18)프로방스 (Provence)
프로방스는 프랑스 동남쪽 해변과 접해 있는 지방 이름입니다. 향기가 기막힌 라벤더 꽃이 많기로 유명하지요. 특히 경치가 좋은 그 곳의 해안을 꼿 다주르(Cote d’Azur)라고 부릅니다. 얘기 들어 보셨죠? 항상 영화제가 열리는 칸느(Cannes), 니스, 모나코가 그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
다. 우리가 항상 얘기만 들어와서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마침 아는 사람들 중에 쌍 졍 캅페라(Saint Jean Cap Fera)에 사는 사람들이 있어 여름에 서로 집을 한 번 바꾸어 보자고 하였습니다. 유명한 사람들의 별장이 많다고 하더군요. 니스와 모나코의 중간에 있으니 아주 잘 됐구나 싶었습니다.
딸이 중학생 때였습니다. 니스 공항에 남겨둔 그 친구들의 차를 타고 해안을 끼고 동북쪽으로 올라가는데 어찌나 길이 막히는지 걸어가는 게 더 빠를 것 같았습니다. 야자수에 조금씩 가려져 보이는 살구빛이 나는 근사한 집들을 보며 살고 싶은 욕심을 수십 번쯤 냈습니다. 캅페라는 동네가 아주 좋고 우리가 묵는 아파트는 지중해 식으로 지은 꽤 좋은 집의 2층에 있었습니다. 부인이 실내 장식가라 내부를 아주 멋있게 해 놓았고 거실의 유리로 된 테이블 밑에는 그 프로방스 지방의 유명한 보라빛이 나는 라벤더(lavender-향수를 만드는 꽃) 꽃을 말려서 커다란 유리그릇에 담아 두어 향기가 그득 하였습니다.
옷장을 열어 보니 장의 반이 우리 쓰라고 비어 있었습니다. 아차! 저는 그런 준비를 하나도 하지 않고 왔는데! 여행 준비를 하면서 한 번 그 생각이 머리를 스치기는 했어도 막판에 정신이 없어 허둥대다가 잊어버리고 그냥 왔는데..... 이런 낭패한 일이 또 어디 있나! 사람은 다 자기를 기준으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저는 그저 우리 동네의 수퍼마켓과 주변의 가 볼만한 레스토랑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듯이 두페이지에 가득 적어 놓고 왔는데요. 너무 미안한 마음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왜 그런데까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는지 원망스러웠습니다.
다음날 아침으로 먹을 것도 살 겸 동네로 구경을 나갔습니다. 금방 구운 듯이 아직 온기가 느껴지고 구수한 냄새가 나는 빵을 하나 샀습니다. 그리고 만들어 놓은 요리를 팔고 파티 서비스도 하는 트레떠르(traiteur) 집에 들어갔습니다. 앞에 줄을 선 여자가 수영복 위에 걸친 고급 옷을 보고 동네가 어떤 곳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구김이 잘 가는 마직으로 된 그 여자의 옷은 단 한군데도 접힌 곳이 (재주 좋네) 없었습니다. 저는 아무리 재주를 부려도 그렇게 다릴 수 없던데요. 유리장 안의 먹음직스런 음식을 몇 골랐습니다. 양념하여 익혀 놓은 닭다리, 무슨 양념이냐고 물었더니 프로방스 허브라고 하였습니다. 햇빛을 잘 받고 그 지방에서 기른 양념인 타임(thyme), 로즈마리(rosemary), 오레가노(oregano), 마죠람(marjoram) 파슬리 등을 섞어 그렇게 부릅니다. 당근을 곱게 채쳐 건포도와 섞은 것도 사고 피망 속을 파내고 쌀과 잘게 썬 야채를 넣고 익힌 것도 몇 개 샀습니다. 모두 어찌나 맛있게 보이는지 휴가를 잘 지낼 것 같았습니다. 그것을 사 들고 기분 좋게 동네 구경을 하였습니다.
오후에는 더위를 가시기 위해 동네의 해변가를 찾았습니다. 물가에서 올려다 보이는 큼직한 집들이 여기저기 나무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항상 그렇듯이, 해변에 와 앉아 있으니 드디어 휴가 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물에 들어가 몸을 식히고 잡지를 뒤적이며 오후를 보냈습니다. 첫 날이라 햇볕을 적당히 쏘이기 위해 저녁이 되기 전에 일찌감치 집에 돌아 왔습니다.
바람이 들어오게 창을 모조리 열고 나무로 된 덧문도 모두 열어 제쳤습니다. 마침 TV에서 보여주는 재미난 영화가 있어 셋이서 편안히 의자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중간쯤 보다가 마실 것을 찾으러 부엌으로 향하는 복도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아니, 어느 청년이 복도에 서 있지 않아요. 누구야? 저는 놀랜 얼굴로 크게 외쳤습니다. 그는 눈 깜짝 할 사이에 침실 쪽으로 사라졌고 제 가슴은 소리가 들릴 만큼 뛰었습니다.
뭐야 뭐? 우리 남편과 딸도 놀래 우리 셋이서 아우성치며 침실의 창으로 달려갔습니다. 어두운 창 밖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하기만 하였습니다.
옛날 집이라 천정이 상당히 높은데 2층을 어떻게 올라 왔을까? 침대 위에는 현관 의자에 올려놓았던 저의 가방 속을 몽땅 털어 놨더군요. 어머, 세상에! 제가 아주 좋아하지만 별로 값이 나가지 않는 시계는 그대로 있었고 어머나 내 반지가..... 겹으로 된 반지의 사이에 모래가 낄까 봐 해변가에서 빼어 가방에 넣었는데 아무리 보아도 없었습니다. 그걸 보고 우릴 따라 왔나? 별 의문이 다 솟았습니다.
경찰이 오고 옆집 사람 뿐 아니라 아래층 사람들도 모두 복도로 나왔고 너무나 겁이 났던 딸은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어를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배운 프랑스어를 재생시키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아직도 놀랜 기운이 가시지 않아 반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덤벙거렸습니다. 기슨(Giesen) 수녀님과 주 수녀님의 프랑스어 시간에 좀더 정신 집중하여 들었을 것을! 좀더 나이가 들은 경찰관은 자기는 파리에서 왔다면서 여름이면 수많은 도둑이 다 꼿다주르로 몰려들기 때문에 많은 경찰을 위쪽에서 내려 보낸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털리는 관광객은 대개 첫날이나 둘째 날 당한다고 하였습니다. 미리 알았으면 오죽
이나 좋았으렸만! 허락도 없이 남의 집에 들어와 헤쳐 놓고 가다니! 기분이 이만저만 나쁜 게 아니었습니다.
한참 후에 한숨 돌리고 나니 그때서야 저는 반지 아까운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온 몸의 기운이 쪼옥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 테라스에 앉아 저녁을 먹을 때도 우리는 아직 놀랜 기운이 가시지를 않아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방마다 덧문까지 모조리 닫고 테라스로 나가는 문만 열어 놓은 채로 앉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데라도 이런 데에서는 살수 없다고 생각 했습니다.다음날 아침 기계가 앵앵 거리며 돌아가는 요란한 소리에 놀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랫집 창에 쇠로된 창살을 달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대낮인데도 동네 사람들은 창의 덧문을 모두 닫
았더군요. 어머 세상에! 우린 이런 데서 못 살아! 나중에 알고 보니 낮에는 더위를 방지하기 위하여 닫고 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
서 낮이나 밤이나 덧문이 열린 것을 거의 본적이 없으니 우리는 죽어도 그런데서는 살수 없다고 맹세 하였습니다.
꽂다주르는 바다 옆에 바로 굴곡이 많은 언덕과 산이기 때문에 경치가 참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차를 타고 한군데라도 놓칠 세라 곳곳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산꼭대기에 에즈(Ezz)라는 옛날 마을이 있다고 하여 구경을 갔습니다. 손바닥만한 적은 마을에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이 사람들은 이 산꼭대기에서 도대체 뭐를 해서 먹고 사나 하고 궁금한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옛날 성을 호텔로 개조한 것이 있어, 거기서 차와 케익을 하나 먹고 가기로 하였습니다. 프랑스는 어디를 가든지 그 빠티서리(patisserie)를 너무나 잘 만들기 때문에 먹지 않고 못 배기지요. 얄삭한 바닥의 껍질. 윤기가 흐르는 자른 과일 사이사이로는 노르스름하게 엉긴 크림이 엿보였습니다. 한 번 질근 깨물면 엉긴 크림이 물크덩 삐져나오고 바삭거리는 얇은 껍질이 부스러지며 혀에 닿을 것 같았습니다.
낭떠러지 쪽의 발코니에 앉았는데 아래를 내려다보니 눈이 아찔하였습니다. 혹시 그것이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우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거라구요. 헌데 그 경치는 자지러질 만큼 기가 막혔습니다. 따끈한 오후의 햇살을 느끼며 우리는 거기서 좀 노닥거리기로 하였습니다. 무장(Mougin)이라는 그것도 아주 옛날 마을인데 아참, 그러고 보면 프랑스 사람들은 옛날 것을 너무나 잘 보존한다고 느꼈습니다. 바꾸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진보성이 별로 없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허물어 버리지 않고 옛것을 잘 보존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보러 본토 사람 뿐 아니라 해외 관광객이 수도 없이 모입니다.
무장은 정말 소꿉장난을 하는 동네 같았습니다. 어떤 곳은 골목이 너무나 좁아서 양손을 뻗치면 두 벽이 손에 와 닿았습니다. 너무나 아담한 구석구석, 마치 동화의 일부를 재현 시키는 연극의 무대에 서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좁다란 골목, 울퉁불퉁한 길을 거닐다가 마침 점심때라 러퍼풀러르(Le Feu Fleur)라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습니다. 지나가며 흘끗 손님들의 접시에 담겨 있는 음식을 내려다보니 음식에 생기가 있고 색체가 살아 있어서 무조건 그리 들어갔습니다.
알지 못하는 곳에 가면 어떤 때는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정말 망설이는 적도 있습니다. 재수 좋으면 잘 걸리고 어떤 때는 돈이 아깝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요. 제가 까다로워서 그렇다구요? 뭐 그럴 수도 있겠지요. 옆에서 왜 빨리 결정하지 못하느냐? 이게 무슨 중요한 결정이냐? 몇 시간 후면 다 나와 버릴 것인데 마치 생사에 관한 중대한 일처럼 취급하느냐? 등등 잔소리를 들어 더욱 결정이 힘든 적도 있습니다. 같은 돈 내고 먹는데 억울하게 맛없는 것을 먹을 수도 없고....
그 날은 정말 운이 좋아서 잘 찾아온 격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3코스의 그날 메뉴를 시켰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둘 혹은 세 코스로 정해 놓는 메뉴는 따로 하나씩 시키는 것보다 값이 훨씬 저렴하거든요. 자기가 좋아 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으면 그것을 시키는 것이 가장 현명하지요.
하나하나 나오는 음식이 어찌나 맛이 있는지 무장이라는 마을이 그렇게 마음에 들 수가 없었습니다. 라벤더로 향수 만드는 공장, 비누 만드는 공장도 기웃거렸습니다. 보랏빛이 나는 잔잔한 꽃이 수도 없이 열린 라벤더 밭의 그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꽃잎을 훑어 손으로 비벼 그 향기에 도취되기도 하였습니다. 홀딱 반해서 집에 돌아와 우리 마당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레벤더를 한 뭉터기 심기까지 하였습니다.
영화제로 유명한 칸느에 갔습니다. 해변가의 넓직한 보도가 시원스럽게 뻗어 있고 큰 호텔이 여럿 늘어서 있었습니다. 고급 상점들도 많았습니다. TV나 잡지에서 본 것처럼 멋진 옷을 입은 잘 생긴 배우들이 없어서 그런지 우리가 생각한 칸느가 아니었습니다. 어쩐지 뭐가 빠진 것 같더라구요.
이게 그 유명한 칸느야? 남편도 시원찮은 듯이 말했습니다. 해변가에서는 의자를 빌려야만 앉을 수 있는데 모래도 곱지 않고 별로라고 생각 되었습니다. 롱아일랜드의 끝없이 보이는 흰 모래 사장으로 눈을 버려 놓았으니 그럴 수밖에요. 복덕방의 광고를 기웃거려 보니 집이 멋있어 보인 것은 말 할 것도 없거니와 값도 상당 하였습니다.
며칠 후에 약간 동북쪽으로 올라가 부촌으로 유명한 모나코를 가 보기로 하였습니다. 모나코는 자그마한 도시에 지나지 않은 작은 땅인데 독립해 있는 곳이고 또 도박과 관광으로 부유한 곳이라 가보고 싶었습니다. 손바닥만한 땅 덩어리에 빈틈없이 건물이 들어 서 있었습니다. 사무실을 위한 건물이던, 아파트 건물, 또 상점이던 모두 상당히 고급스럽게 지은 것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와! 와!를 연발하며 기어가듯 차를 몰았습니다. 그곳은 정말 금싸라기 땅 값일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화려하게 진열되어 있는 물건들이 우리가 살 꿈도 못 꿀 물건들이었습니다. 왜 아까워서 입지도 못할 옷, 입고 갈 데가 없을 옷, 그리고 쓰지도 못할 것 같은 그런 물건 아시잖아요.
야, 우리가 이렇게 못 사냐? 남편이 지껄였습니다.
카지노 옆에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유명한 요리사 알랑 두카스(Alan Ducasse)의 레스토랑이 있었습니다. 제가 메뉴를 공부라도 하듯이 꼼꼼히 읽고 있으니까 남편이 저에게, 거기 들어가고 싶어 하고 물었습니다.
그런 레스토랑에 올 줄 알았으면 좀 어울리게 차려 입고 와서 기분을 냈을텐데! 구경 다니느라 입은 편한 옷이 다 구겨져 있었습니다. 발을 내려다보니 이번 여행 끝에 버리고 가기로 한 캔바스 신은 마음대로 일그러져 있었고요. 거금을 내야 하는 곳으로 유명한데! 아주 고급 레스토랑이니 여자들 메뉴엔 값이 적혀 있지 않을 것이구요(여자이니 값에 신경쓰지 말라고). 분명 여러 명의 웨이터가 시중을 들텐데. 저는 결국 다음으로 미루자고 하였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안갈 줄 알았으면 아니, 한 번 간 기회는 다시 잡을 수 없다는 것을 그때 생각했으면 모든 기분을 접어두고 무조건 오케이 했을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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