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르 클레지오의 삶과 문학… 한국과도 깊은 인연
생존해 있는 가장 아름다운 프랑스어를 쓰는 작가
소외자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일관된 시선 견지
200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68)는 수년간 노벨문학상의 유력 후보로 꼽혀 온, 프랑스 당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1940년 세계적 휴양지인 니스에서 영국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영어와 프랑스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으나 영국이 인도양의 모리셔스 섬을 식민지화하려는 데 반감을 가지고 프랑스어로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1963년 첫 소설 <조서>가 프랑스의 대표적 문학상인 르노도 상을 수상함으로써 화려하게 데뷔한 그의 초기작은 누보르망 계열의 실험소설들이었다.
<조서> 이후 발표된 <열병>(1965) <홍수>(1966) 등 일련의 작품에서 그는 물질화되고 기능화된 현대 도시문명의 공격적 현실 앞에서 인간의 자리와 삶의 의미에 대해 전면적인 회의를 던졌다.
이처럼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존재론적 탐색을 시도한 르 클레지오의 초기 문학은 1960년대 후반 멕시코, 파나마 여행을 계기로 새로운 궤적을 그린다. 그는 그곳 인디언들과의 만남에서 서구문명이 찾고자 했으나 발견하지 못했던 자연과 어우러진 삶, 존재의 모델을 발견한다.
1970년을 전후해 잇달아 발표한 <사랑의 대지>(1967) <도피의 서>(1969) <전쟁>(1970) 등에서는 초기작에 드리워져 있던 불안과 냉소, 두려움의 요소가 걷히고 안정이 깃들기 시작한다. <거인들>(1973)은 그의 어두운 시기의 종지부를 찍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라틴아메리카와 함께 또다른 그의 중요한 문학적 모티프는 아프리카다. 그는 20년 이상 아프리카에서 의사 생활을 한 부친과 함께 보낸 유년시절의 체험을 바탕으로 2004년 그의 상상세계가 아프리카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여준 <아프리카인>을 발표했다.
작고한 아버지에 대한 회고 형식인 이 소설에서 그는 서구 과학기술과 물질주의의 허영에 대한 불신, 권위주의에 대한 반항, 식민주의자들의 부당한 차별과 위선과 무책임에 대한 분노, 아프리카에서의 경제적 이권을 둘러싼 서구국가들의 정치적 술수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드러냈다.
<조서> 등 르 클레지오의 대표작들을 국내에 소개해온 소설가 최수철씨는 그는 안주하지 않고 늘 변화하는 작가라며 그러나 변함없이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힘은 문체 뿐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나타나는 서정성이라고 평가했다.
홍상희 경성대 프랑스지역학과 교수는 르 클레지오의 작품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룬 어린 시절의 행복, 사회적 관습 속으로의 전락, 현대사회의 비인간적인 면모, 도피의 욕구 등을 다루고 있다며 그는 현대 기술ㆍ도시문명의 외양을 꿰뚫어보는 몽상가이자 새로운 신화적 작가라고 말했다.
르 클레지오는 겸손하고 소탈한 사람
이화여대 초빙교수로 강의도
한국영화 섭렵… 김치 좋아해
르 클레지오를 만났던 한국 문인들은 한결같이 겸손하고 소탈한 모습으로 그를 기억했다.
지난해 르 클레지오를 인터뷰한 이재룡 숭실대 교수는 그에게서 받은 느낌을 대단히 선하고 개방적이라고 표현했다. 이 교수는 외국 생활을 많이 해서 그런지 자기 입장만 고수하지 않았다며 프랑스인 특유의 거만함이 그에게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젊은 시절 병역 대체 복무로 태국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쳤는데, 이때의 경험이 불교를 비롯한 동양 문명 전반에 대한 깊은 이해로 이어진 것 같다며 특히 다른 나라를 압박한 경험이 없는 한국에 대해 유난히 큰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르 클레지오는 2001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와불로 유명한 전남 화순 운주사를 찾았다가 ‘운주사, 가을비’라는 시를 쓰기도 했다. 이 시에서 그는 ‘서울이 불 밝힌 편주(片舟)처럼 떠다닐 때… 고요하고 정겨운 인사동의 아침’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한국을 피부로 받아들였다. 한국 영화에도 관심이 많아 프랑스에서 개봉한 거의 모든 한국 영화를 섭렵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미경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교수는 르 클레지오가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선진국이 아닌 주변국의 문화에 진심으로 관심과 애정을 쏟을 줄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최근에도 진도에 들러 진도굿과 진돗개 등을 보고 갔는데 피상적인 관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것을 느끼고 싶어했다며 이화여대 초빙교수로 있을 때는 직접 고춧가루를 넣고 국을 끓여 먹을 정도로 소탈한 모습을 보였다고 소개했다.
1940년 프랑스 니스 출생
1960년 니스대학 수학, 영국 브리스톨대 유학(미술사 전공)
1963년 첫 소설 <조서> 발표. 르노도 상 수상
1964년 앙리 미쇼 연구로 엑상프로방스대학에서 석사학위 취득
1966년 태국 방콕에서 군 대체복무
1967년 멕시코 체류
1973년 파나마 체류
1980년 <사막> 발표. 아카데미프랑세즈 소설상 수상
1994년 ‘리르’지, ‘생존해 있는 가장 아름다운 프랑스어를 쓰는 작가’로 선정
2001년 주한 프랑스 대사관·대산문화재단 초청 방한
2002년 미국 뉴멕시코대 불문학과 미술사 교수 재직
2003년 자전적 소설 <혁명> 발표
2007년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초빙교수
▲주요작품 <열병>(1965), <홍수>(1966), <사랑의 대지>(1967), <도피의 서>(1969), <전쟁>(1970), <거인들>(1973), <성스러운 세 도시>(1980), <디에고와 프리다>(1993), <황금물고기>(1997), <우라니아>(2006) 등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