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카운슬링 스타일은 다분히 비판조입니다.”

수십년전 카운슬러 교육을 받고 있을 때, 학부모와 학생을 상대로 상담 실습을 하고 난 후 동료학생으로부터 들은 평가였다.

실습이래야 겨우 30분 정도 학부모, 학생의 얘기를 듣고,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정보를 제공하고, 상호 의견을 조정해서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는 공식을 따르는 짤막한 상담이었는데, 그 짧은 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방에게 비판적인 태도가 표출되었던 모양이다.

영어로 judgmental이라는 말이 ‘나는 옳고 상대방은 틀리다’라는 독선적 요소의 여운을 품고 있는 표현이기 때문에, 미국 동료학생으로부터 이 평가를 듣고, 움찔했던 생각이 났다. 그 이후부터 이 평가를 염두에 두고 될 수 있으면, 나의 잣대로 남을 비판하는 카운슬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이런 결심에도 불구하고, 미성년 학생을 상대로 하는 상담에는 완전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반드시 최상의 방법이 아니고, ‘나의 길이 옳고 너의 길은 잘못이야’라는 식의 judgmental한 카운슬링도 경우에 따라 상당한 효과를 내는 상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새 학기 시작 후 학교에서는 첫 시간에 늦는 지각생 단속을 시작하였다.

매일 아침이면 교문 밖에 지각하는 학생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어쩌다 학교 바깥을 한 바퀴 돌다보면, 첫 시간이 시작된 지 한참 지났는데도, 급할 것 없다는 듯이 천천히, 여유만만하게 웃고 떠들며 걸어가는 학생들을 보게 된다.

정당한 이유없이 습관적으로 지각하는 학생을 어떻게 상담해야 할까?
개학한 지 20일을 조금 넘긴 어느 날 첫 시간 지각이 벌써 7번이 되는 학생을 상담하게 되었다. 반복하는 지각의 이유를 물어보니, 늦잠을 자서, 알람이 고장 나서, 두통이 나서, 엄마가 라이드를 못 주게 되어서 걸어오느라고, 카풀하는 사람이 늦게 와서 등등 이유도 가지가지이다. 모두 예기치 못했던 사정 때문에 할 수 없이 하게 된 지각이 아니었다.

이럴 때야 말로 “특별한 사정없이 지각하는 습관은 결코 좋은 습관이 아니다”라고 judgmental한 카운슬링을 하는 것에 대해서 주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얘, 네가 아직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하는 지각에 대한 벌이 비교적 가벼울 수가 있지만, 이 다음 직장생활을 하면서 피치 못할 이유가 없는데도 지각을 자주하면 그 결과가 어떠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겠지? 지각은 너 자신에게만 손해가 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주는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니?”

카운슬러 사무실에서 다루어야 하는 문제들이 물론 지각하는 습관처럼 단순하고, 쉽게 잘잘못을 지적할 수 있는 문제만은 아니다.

러시아에서 온 나탈리아는 검정고시를 쳐서 대학으로 직접 진학하겠다고 학교를 중퇴하겠단다.

2년제 대학에 다니면서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고등학교에서 4년을 ‘낭비’하기가 싫다는 얘기였다.

“그래도 고등학교에서 정규교육을 마치고 대학에 가는 것이, 장래에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준비도 되고, 또 또래친구들과 어울려 보내는 4년이 너의 사회성 개발과 인격 형성을 위해서 일생에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귀중한 기회라고 생각하지 않니? 학교 중퇴문제를 재고해보기 바란다.”

아무래도 나는 judgmental 한 상담 스타일을 못 벗어날 모양이다.

김 순진
<밴나이스 고교 카운슬러·교육학 박사>